좁은 교실, 몸에 맞지 않는 책상에 빽빽하게 들어찬 학생들이 저마다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의 앞에는 칠판을 등진 채 분필을 던지고 침을 튀겨가며 시험에 나올 문제를 짚어주고 있는 선생님이 있다. 아이들은 졸거나, 다른 과목의 문제집을 풀고 있거나, 열심히 끄덕이거나 아니면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우리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교실 또는 학원 강의실의 풍경이다.

하지만 교육의 진정한 목적은 시험 문제의 정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정말로 모르는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완벽히 습득하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또 획일화된 진도를 억지로 따라가기보다는 개인의 고유한 능력과 이해도에 따라 학생들이 보다 편안하고 자유롭게 공부하는 게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보충 학습은 필요한 학생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각 개인의 성취도와 발전은 논리적으로 분석되어 다음의 학습 목표를 계획하는데 반영되어야 하지 않을까?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과연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것들인지 누구나 의구심과 저마다의 불만을 품고 있을 이 질문들을 해결코자 팔을 걷어붙인 진짜 공부의 신이 여기 있다. 이번 IBR 5월호 Leader’s Story의 주인공은 칸 아카데미(Khan Academy)의 살만 칸(Salman Khan)이다.

진정한 공부의 신, 살만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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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아카데미와 살만 칸을 설명해주는 단편적인 사실들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2010년 가장 혁신적인 비영리를 지원하는 구글 어워드의 선정 조직이자 매달 600만 명의 사용자가 시청하고 총 2억 5천만 번의 조회수를 기록한 학습 동영상들을 생산하며, 게이츠 재단, 스콜 재단, 구글, 오라클, 가장 영향력 있는 벤처 캐피탈리스트 중 하나인 존 도어(John Doerr)와 앤(Ann) 도어 부부 등의 후원을 받고 있는 비영리 교육 조직. 또 2012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1명, ‘1조짜리의 기회(1 Trillion Opportunity)’라는 제목으로 포브스 지 커버를 장식한 사람. 무엇보다도 빌 게이츠조차 해결하지 못한 그의 자녀들의 수학 공부를 해결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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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포브스 지의 커버를 장식한 살만 칸 (출처 : alalodulal.org)

 

멀리 사는 사촌에게 수학을 가르쳐주기 위해 유튜브로 강의 동영상을 올리다가 점점 그 규모가 커지자 마침내 헤지펀드의 애널리스트를 그만두고 칸 아카데미를 설립하게 되었다는 칸 아카데미 설립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사람들에게 대강 알려져 있다. 하지만 칸 아카데미의 진짜 혁신과 비전이 그가 실제 경험을 통해 체감한 모순과 고민에서 어떻게 출발했는지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경험들을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되었을까? 

학생 시절 그가 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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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 칸은 1976년 10월 11일, 미국에서도 가장 남부 지역인 딥 사우스(Deep South)에 속하는 루이지애나 주의 뉴올리언즈 시 머태리(Metairie)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방글라데시 출신의 소아과 의사였는데, 전통적인 풍습에 따라 미국의 의과 대학에서 연수 중이던 1972년 방글라데시로 돌아가 부모님이 정한 정혼자인 칸의 어머니와 결혼을 하고 미국에 돌아와 정착했다고 한다. 그러나 습한 기후, 매운 음식 등으로 대표되는 뉴올리언즈와 서남아시아의 환경이 서로 유사했던 까닭이었는지 칸의 친척들은 뉴올리언즈를 매우 좋아했고 꾸준히 칸의 부모님을 방문하며 교류를 유지했다. 이렇게 이민한 부모님 밑의 1세대로 태어났지만, 살만은 늘 친척들과 가족들에 둘러싸여, 가족의 가치에 감사하며 헌신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살(Sal)의 꿈은 교육 혁명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수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그는 리처드 파인만 같은 물리학자를 꿈꾸던 소년이었다. 그런 그에게 10학년 때 자신을 둘러싼 학교 교육에 대한 시각이 완전히 바뀌는 경험이 일어나는데, 이는 라이벌이자 일생의 친구가 된 샨타누 신하(Shantanu Sinha)와의 만남이었다. 이들은 지역 수학 경시대회에서 맞붙게 되는데, 어린 시절부터 지역의 유명한 수학 영재였던 샨타누는 살을 결승전에서 가볍게 이겨버린다. 그러나 그를 진짜로 놀라게 한 것은 샨타누의 천재성이 아니라 자신과 동일한 학년인 그가 12학년 과정인 미적분학을 막 배우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당시의 살은 이미 개념을 익혀 지루하기만 한 대수학 II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샨타누는 시험을 통과하여 다음 레벨의 수학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살은 이러한 조기 학습을 “testing out”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testing out”은 여태까지 그가 느끼던 지루함과 답답함을 해결해줄 돌파구로 그에게 다가온다.  

학교로 돌아가 선생님들에게 자신도 상급 수업을 듣게 해달라고 제안한 살은 ‘우리는 여태까지 그런 요청을 허락한 적이 없고 따라서 예외를 둘 수 없다’는 대답과 함께 보기 좋게 거절을 당한다. 하지만 살은 이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 이미 특정 내용을 이해했고, 다음 레벨을 배울 수 있는 준비가 충분하다면 어째서 교실에 앉아 다 아는 내용을 다시 들어야 할까? 자기 진도대로 공부할 수 있고, 그게 더 효과적이라면 배움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계속 유지하는 일도 더 쉽지 않을까? 또 과정을 모두 이수해서 미리 졸업할 수 있게 된다면 이로 인해 절약된 자원을 다른 학생들에게 더 나누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질문들이 살의 머리를 채운 가운데, 결국 그는 동네의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여름 계절 학기에 개설되는 수학 강의를 듣는 방법으로 선행 학습에 대한 욕구를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살만 칸은 이 또한 교육의 가치와 중요성을 존중하는 부모님과 자신의 주변 환경 덕분임을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 이에 그의 마음 속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추가된다. 자신과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없는 학생들은 어떻게 될까?

이런 질문들을 가슴에 품고 수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살은 MIT에 진학한다. 수학뿐만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대한 관심도 함께 공유하던 친구 샨타누와 함께. 룸메이트로 함께 지내게 된 이 고향 친구들은 그러나 대학 교육에 크게 실망한다. 커다란 대형 강의실에 몇 백 명을 앉혀놓고 교수 혼자서 일방적으로 말하는 강의는 그들에게 너무나도 지루했다. 살은 심지어 친구들이 강의실에 열심히 출석하는 이유는 분명 부모님이 내준 등록금이 아까워서거나 혹은 노벨상을 받은 유명한 교수를 구경하고 싶어서, 이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그가 관찰한 사실은 이렇게 수업에 열심히 다니는 학생들이 시험 기간에는 똑같이, 오히려 자신보다 더 힘들게 고생을 한다는 점이었다. 도대체 이들은 수업에서 뭘 배운 걸까? 이 질문을 통해 살은 학습자를 배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교육, 또 학습자를 수동적으로 만드는 교습은 결코 의미도 효과도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살과 샨타누는 동급생들 사이에서 수업 빠지는 학생들(class skipper)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고, 이내 자신과 같은 선배들을 만나게 된다. 살과 샨타누처럼 강의실에 좀처럼 나가지 않는 이 상급생들은 한 학기에 보통 학생들의 두 배인 8~9개 씩의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그냥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벅찬 많은 학생들을 생각하면 이는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하지만 살은 이들이 물론 똑똑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엄청난 천재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들의 주장은, MIT뿐만이 아니라 모든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교실에 앉아 정해진 시간의 강의를 들어야 한다는 의무를 없애고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과 진도에 따라 공부를 하도록 허락한다면, 과목수를 두 배로 늘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학습자의 절제와 노력이라는 전제 조건이 붙지만, 이러한 조건만 충족된다면 누구나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며 독립적으로 필요한 내용을 습득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논지였다. 또 MIT는 학생들이 원하면, 또 따라갈 수 있으면 얼마든지 수업을 들을 수 있는, 나름 혁신적인 교육 환경을 갖추고 있는 학교였다. 샨타누와 살은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였을까? 물론이다. 이들은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강의 수를 늘리기 시작했고 4년 동안 높은 학점과 여러 개의 학위를 얻고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살은 수학 학사와 컴퓨터 공학의 학석사 통합과정 학위를 땄다.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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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2012년 6월 8일, MIT 졸업식에서 졸업 연설을 하고 있는 살만 칸. (출처 : web.mit.edu)

 

1998년, 살만 칸은 대학 졸업과 함께 고향과 달리 늘 추웠던 매사추세츠 주를 떠나 당시 닷컴 붐이 한창이었던 서부의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간다. 물론 샨타누도 함께였다. 여전히 동일한 룸메이트와 살며 실리콘 밸리의 기술 스타트업에서 일하던 살은, 2001년 다시 하버드 경영 대학원에 입학한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학교에 어째서 다시 돌아갔느냐는 질문에 대해 살은 결혼할 여자를 찾는 것이 목표였다고 하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90년대 말 실리콘 밸리는 여자친구 혹은 부인될 사람을 찾는데 절대적으로 최악의 장소였다는 것이다. 2년 뒤, MIT에서 받은 두 개의 졸업장에 하버드 MBA 졸업장을 보탠 살만 칸은 보스턴의 헤지펀드에서 리서치 애널리스트로 일하게 된다. 새로운 직장, 새로운 일을 맡은 그는 인생의 새로운 단계로도 나아가게 된다. 애초 학교로 돌아온 목표에 성공,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와이프는 자신처럼 MIT를 졸업한 의사였다. (더 대단하다.)

전화 과외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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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8살의 살은 결혼식을 올리고 40명도 넘는 그의 대가족은 멀리 뉴올리언즈에서 그를 축하하기 위해 뉴저지까지 날아온다. 이들 중 한 명은 돌아오는 가을에 7학년이 되는 12살의 나디아로, 살의 사촌인 그녀는 언제나 A를 받는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나디아는 당시 학교에서 친 수학 시험에서 처음으로 낮은 성적을 받게 되었고, 살은 본래 논리적이고 창의력도 뛰어난 나디아가 완전히 풀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몇 달 후, 살은 보스턴에 놀러 온 나디아의 가족을 다시 만나는데, 여전히 사촌 동생이 똑같은 상태인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나디아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기초적인 단위 변환이었다. 킬로그램을 그램으로 변환하거나, 미터를 킬로미터로 변환하는 등의 문제에서 똑똑한 아이가 완전히 고전하고 있는 것이었다. 살은 어째서 6학년이 이렇게 쉬운 것 때문에 괴로워해야 하는지에 대해 걱정했고, 지금 이 부분을 완벽하게 떼지 못한다면 결국에는 수학을 포기하게 될 것이 뻔한 사촌 동생을 위해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면서도 그녀를 위해 과외를 해주겠다고 나선다. 

물론 그는 그전까지 누군가에게 수학을 가르쳐 준 경험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학을 이해하고 있었고 이를 가족을 돕는 데 쓰고 싶다는 생각이 전부였다. 그는 MIT 시절 너무나도 저명한 교수들을 여럿 봤지만, 자신의 지식을 학생들에게 도저히 전달하지 못하는 선생님들도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며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직관적이며, 개인적인 기술에 기반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또 그는 가르침을 받는 학생 입장에서 어떻게 머리 속에서 학습 과정이 진행되는지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아무런 부담이나 제약 없이, 즉 박스 바깥의 사고(thinking outside the box)가 아닌, 아예 박스 없이 문제에 접근할 수 있었다. 여기에 학생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보다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자랑하는 투의 교사들, 혹은 정석대로만 가르쳐서 학생들이 생각할 여지가 전혀 없는 수업 등 본인의 경험을 거울삼아 개인적으로 친밀하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고, 그러면서도 학생들의 대답과 생각을 지속적으로 끌어낼 수 있도록 수업 환경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다. 

2004년 가을, 이들은 야후 메신저와 인터랙티브 노트패드인 두들(Doodle), 그리고 전화로 과외를 시작한다. 물론 처음부터 매끄럽게 진행될 리가 없었다. 살은 나디아가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것이 어려웠고 나디아는 여전히 문제를 푸는 것을 두려워했다. 살이 전화로 나디아에게 문제를 내면 늘 긴 침묵 끝에 자신 없는 대답이 들려왔다. 수학에서 답을 추측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보통 교사들은 학생들을 돕는다는 생각에 질문을 던지지만, 학생은 틀릴 게 두려워, 혹은 선생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사고 과정이 일시에 멈추거나 온전히 문제 해결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방해 요소가 생각난다. 이를 파악한 살은 나디아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디아, 난 네가 똑똑한 아이라는 걸 잘 알고 틀린다고 해서 결코 너를 판단하지도 않아. 하지만 우리 규칙을 바꿔보자. 답은 추측하면 안되고, 미지근하게 답해서도 안돼. 내가 듣고 싶은 건 딱 두 가지야. 확실하고 자신감 있는 답이라면 나한테 소리를 질러도 돼. 아니면 ‘살, 이해가 안되니 다시 설명해줘.’라고 하든가.”

규칙을 바꾸자 나디아는 문제 앞에서 머뭇거리는 태도가 사라졌고 살도 수학을 가르치는 데 점점 요령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수업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곧 단위변환을 이해하게 된 나디아는 자신감을 되찾고 빠르게 진도를 나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일종의 분노를 느끼게 되는데, 이는 이전에 이렇게 쉬운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성격의 분노였고, 또 스스로가 잠시나마 수학을 포기했었음을 깨닫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이 섞인 분노였다. 

나디아는 다시 수학에서 A를 받기 시작했고 이후 살은 아르만과 알리라는 나디아의 남동생들도 과외를 시작한다. 아이들의 수학 성적이 올라가면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주변의 이웃들 덕분에 살은 순식간에 10명을 가르치는 인기 강사가 된다.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그는 여러 명을 묶어 스카이프로 강의했지만 이는 1대 1로 하는 것만큼 효과적이지 않았다. 또 저마다 이해 속도의 차이가 있는 아이들은 강의를 듣다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그에게 다시 물어보기를 여전히 어려워했다. 결국 살은 자신의 강의를 녹화하여 아이들이 온라인으로 접하게 했는데, 곧 온라인으로 만나는 자신을 학생들이 더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곳이 책상이든, 식탁이든 아이들은 자신이 가장 편안한 환경에서 마음대로 살의 강의를 다시 보고 또 멈출 수도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그는 아이들이 자신의 동영상 강의를 끝낸 뒤 연습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자동적으로 질문을 생성하는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기 시작한다. 살은 프로그램의 코드를 써내려 가면서 실제 강의 때는 어떤 부분에 집중할 것인지, 또 어떻게 개념을 설명할지에 대해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살의 강의는 점차 정교해지기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그는 이때부터 학생들의 학습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고, 조직하고, 해석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탄력이 붙은 과외 활동은 이제 본래 일보다 재밌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살은 헤지펀드에서 일하는 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절대악을 생산하는 직업이라고 결코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자신이 평생 하고 싶은 일이 당시의 직업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고 주어진 삶을 가장 최선으로 사는 방법에 대해 고민에 빠진다. 그는 가르치는 일을 본격적으로 해야할지 고민하는 가운데,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조금씩 저축을 시작한다.

칸 아카데미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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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디아와 서툰 발걸음을 뗀 지 2년이 지난 2006년 가을, 살은 학생들이 편하게 강의를 찾아볼 수 있도록 유튜브에 칸 아카데미 채널을 만들어 과외 영상을 올리기 시작한다. 이마저도 친구의 권유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살은 유튜브가 피아노 치는 고양이를 위한 웹사이트지, 수학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이 오는 채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동영상에 즉각적으로 반응했고, 살만 칸은 전 세계로부터 다양한 피드백을 받게 된다. 대다수는 그의 강의 덕분에 수학이 즐거워졌다는 감사의 표시였고 그 중 일부는 현장의 교사들로 살의 강의를 보고 오는 것을 숙제로 내주었더니 학생들의 실력이 크게 향상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살은 점차 가르치는 것이 자신의 천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칸 아카데미의 설립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한다. 

칸 아카데미의 설립 초기, 살만 칸은 자신의 학생 시절의 경험과 또 사촌들의 과외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 몇 가지를 칸 아카데미의 철학과 운영 전반에 반영한다. 우선 어디에 있는 누구에게나 수준 높은 무료의 교육 컨텐츠를 제공(provide a free world-class education for anyone, anywhere)한다는 미션을 들여다보자. 이는 부모님 덕분에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자신의 환경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21세기 교육의 역할에 대한 깊은 고민에서부터 비롯했다. 그는 교육이 역사의 발전 단계마다 언제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말하는데, 현재의 하버드와 예일 대학교는 아메리카를 처음 발견한 뒤 이주민들이 건너와서 세운 학교이며, MIT와 스탠포드 대학, 오늘날의 주립 대학교 제도는 산업 혁명 및 미국의 영토 확장의 부산물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날 마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정보의 혁명이다. 살만 칸은 정보 혁명 시대에는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창의성, 분석적인 사고 능력이 더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가 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오늘날의 교육은 이러한 생존 능력을 누구에게나 배양할 수 있어야 하며, 이미 발전 정도가 충분한 기술을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원하는 누구나 무료로 강의를 들을 수 있다고 파악한 것이다. 그는 엄청난 성공이나 화려한 부를 꿈꾸지 않았다. 대신 영속적이면서도 변화의 힘을 가진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 있는 목표라고 생각했고, 자신의 미션을 통해 앞으로도 몇 세기 동안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근간을 흔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했다. 

칸 아카데미의 컨텐츠를 유료로 하자는 제안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그의 마음에 썩 차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여든 살이 됐을 때, 나는 수십 억 명의 학생들에게 세계적인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내가 일조했다고 느끼고 싶어요. 이는 선진국에서 개발한 교육 컨텐츠 일부를 월 19.95달러에 제공하는 사업을 하다가 대형 교과서 회사에 매각하는 일보다 훨씬 멋지잖아요. 나는 이미 아름다운 부인에, 재미난 내 아들, 두 대의 혼다 자동차와 살기 좋은 집이 있는데, 굳이 더 필요한 건 없잖아요?” 이렇게 칸 아카데미는 2008년 501c(3) 지위를 갖는 정식 비영리 조직으로 등록한다.

미션 뿐만 아니라 교육 방법에 있어서도 칸은 자신의 경험을 전략에 반영한다. 우선 그는 패드를 이용하여 칠판에 글씨를 쓰는 방식을 유지한다. 이는 학생들이 스스로 판서를 따라가면서 이해 능력이 길러지고, 또 어떻게 수업이 전개될지 긴장하고 호기심을 가질 수 있으며 문제를 푸는 방법을 보여줬을 때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레슨 시간도 중요했다. 사촌들을 가르친 결과 이들이 동영상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 정도로 파악되었는데, 이 때문에 칸 아카데미의 동영상은 대개 10분 이내, 길어도 15분을 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논리적으로 과정과 단계를 나누어 집중할 수 있는 만큼만 한번에 가르쳐 주는 것. 이후에 그는 자신의 직관적이고 경험적인 판단이 실제 교육학적 연구 근거가 있는 것으로 알게 된다. 

칸 아카데미 동영상의 또 다른 특징은 교사가 절대로 영상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조직 설립 초기에 시간과 비용을 많이 투입할 수 없었던 환경 때문에 영상 제작에 있어서 최대의 생산성, 최소의 비용을 목표했던 데서 비롯된 원칙이다. 살이 영상에 등장하려면 우선 비디오 카메라와 조명을 구매하고, 매번 설치하며 또 용모를 신경 써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는 이러다 보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영상이 어떻게 찍히는지에 대해 더 신경을 쓰게 될까봐 자신의 목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가르치는 내용이 칠판에 차례로 적혀지는 방식을 택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칠판을 등지고 이야기하는 학교의 수업 환경과는 정반대의 효과를 내는데, 마치 살만 칸이 학생과 어깨를 붙이고 식탁에 나란히 앉아 공부를 지도하는 친밀한 느낌을 주며 교사의 표정과 제스처를 보지 않은 채 목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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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칸 아카데미로 교실과 집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 (출처 : wired.com @Joe Pugliese)

 

빌 게이츠도 즐겨 찾는 칸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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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은 2009년 9월, 정식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실리콘 밸리의 마운틴 뷰(Mountain View)로 이사하며 칸 아카데미에 올인한다. 그의 웹사이트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사들 사이에서도 점차 유명해지기 시작했지만 상황은 아직 좋지 않았다. 당시 칸 아카데미는 PC 한 대, 20달러짜리 스크린 캡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80달러짜리 펜 타블렛이 자산의 전부였고, 여기에 50달러의 웹사이트 계정 유지비가 다달이 나가고 있었다. 교사와 엔지니어, 지원 스탭, 행정 직원은 합쳐서 달랑 한 명, 즉 살만 칸 혼자서 특별한 소프트웨어도 없이 그래프와 수학식은 마이크로소프트의 그림판으로 삐뚤빼뚤 직접 그렸고 수십 일을 티셔츠와 트레이닝 팬츠만 입고 헤드셋을 낀 채 옷장 속에서 동영상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보내는 소정의 기부금과 저축으로 버티던 살만 칸은 2010년 봄, 페이팔로부터 칸 아카데미 기부금 계좌에 누군가 1만 달러를 넣었다는 이메일을 받는다. 이 후원자는 구글과 아마존을 키워낸 실리콘 밸리의 전설적인 벤처 캐피탈리스트 존 도어의 부인 앤 도어였는데, 살은 그녀에게 감사 편지를 보내며 나중에 칸 아카데미 캠퍼스가 생기면 그녀의 이름을 따 건물을 짓겠다고 한다. 이들은 점심을 함께하게 되는데, 칸의 비전과 열정을 알아본 앤 도어는 자신의 만 달러가 칸 아카데미가 여태껏 받은 가장 큰 기부금이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10만 달러의 후원을 결정한다. 칸 아카데미가 처음으로 받게 된 상당한 금액의 기부금이었지만 돈 보다도 앤 도어 같은 유명한 자선가의 지원은 이들의 활동이 보다 널리 퍼지는 데 도움이 된다. 앤 도어는 주변 사람들에게 칸 아카데미를 알리며 때때로 살의 사무실에 직접 들러 간식을 선물하고 가는 적극적인 지원을 보내주었다. 

같은 해 가을, 칸 아카데미는 세상을 바꾸는 조직들에게 수여하는 구글 어워드에 선정, 총 2백만 달러의 기금을 받게 되며 빌 게이츠 재단으로도 150만 달러를 받게 된다. (빌 게이츠는 실제 자녀들의 수학과 과학 공부를 지도하면서 칸의 동영상을 발견하게 되었고, 실제 웹사이트 이용을 통해 크게 도움을 받게 되자 바로 기금 후원을 결정했다고 한다.) 이 돈으로 살은 과연 무엇을 했을까? 바로 맥킨지 컴퍼니의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던 친구 샨타누를 부르는 일이었다. 샨타누는 대표와 최고운영자 조직을 맡으며 칸 아카데미에 합류하며, 이들은 바로 소프트웨어 개발과 디자인을 맡을 전문 개발자 2명을 채용한다. 이 네 명은 2010년 10월 정식으로 사무실을 구한다. 

칸 아카데미, 교실을 뒤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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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아카데미는 교육 컨텐츠를 제공하는 기존의 웹사이트와 여러모로 차별화된다. 이런 차별점들은 우선 앞에서 설명한 무료이면서도 질 높은 컨텐츠를 제공한다는 미션, 동영상의 길이와 수업 방식 등으로 쉽게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칸 아카데미의 혁신적인 부분은 이러한 복제 가능한 부분이 아닌, 살만 칸의 본질적인 비전과 철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살만 칸은 자신의 강의 방식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내가 이렇게 배웠으면 좋았을거라고 희망했던 방식대로 강의합니다. 제 강의는 실제 저를 둘러싼 세상에 매료된 저로부터 비롯되며, 개념은 고루한 교육학자들이 개발한 교과서에 따르는 대신 제가 이해하는 방식을 통해 전달되죠. 제 강의를 접한 사람들은 제 영상이 배움과 가르침에 대한 열정을 갖춘, 괴짜지만 결심이 강한 사람의 사랑과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저는 어떤 기업도, 또 정부도, 얼마만큼의 돈을 쏟아부어도 이것들처럼 만들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제가 봤을 때는 교과서의 정식 커리큘럼은 내용을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기억할 수 있는 필수적인 포인트와 연결점들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어요. 똑똑한 주변 친구들조차 시험만을 위해서 어떤 직관이나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 채 문제를 푸는 단계만 외웠고 시험 이후 몇 주 만에 내용을 다 잊어버리기 일쑤였지요. 이 비디오들은 애초에 개념들이 어떻게 설명되고 전달되어야 했을지에 대한 제 의견의 표현입니다.”

살의 위와 같은 의견은, 실제 수요자가 원하는 것과 이들에게 제공되는 컨텐츠 사이의 괴리를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정규 교육 과정(K-12) 커리큘럼은 실제 대형 주 정부의 교육 부서와 출판사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텍사스나 캘리포니아처럼 인구가 많은 주는 교과서의 구매력이 세기 때문에 이들 주 정부 내 교육 부서의 소수 의사결정권자들이 결정하는 커리큘럼이 결국은 미국의 다른 주 정부의 교육 부서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커리큘럼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크게 고려되는 것은 예산, 그리고 교육학자들이 만들어놓은 교과 내용의 체크 리스트이다. 학생들의 요구와 실제 교실의 수업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커리큘럼이 이렇게 완성되면, 교과서 출판사들은 각 지역의 교육청을 대상으로 로비를 시작하고, 이 과정에서 수요자 경험(end-user experience)이라는 교육의 최우선적 고려 요소는 배제되는 것이다. 따라서 살만 칸은 교육부가 정해놓은 커리큘럼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수요자 입장에서 가장 쉽고 논리적으로 따라갈 수 있는 새로운 커리큘럼을 제안하는 접근방법을 따른다. 이것을 구현한 체계가 칸 아카데미의 지식 지도(knowledge map)이다. 지식 지도는 우주의 별자리 같은 모양을 띠고 있는데, 맨 위의 출발점을 클릭하면 숫자를 배우고 한 자리 덧셈, 뺄셈을 가르치는 동영상 페이지로 넘어간다. 동영상을 다 듣고 나면 학습자는 연습 문제를 풀게 되는데 이 연습 문제를 10번 연속으로 완벽하게 풀어야만 다음 과정을 들을 수 있다.

연습 문제를 완벽하게 풀어야만 다음 단계를 배울 수 있는 것 또한 칸 아카데미의 특징이다. 살만 칸은 ‘마스터 학습(mastery-learning)’이라는 자신만의 개념을 주장하는데, 학생들이 모르는 내용을 반복해서 듣고, 문제를 계속 풀어보면서 실험하고 또 실패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해당 내용을 완벽하게 마스터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파한다. 시험은 특정 상태를 보여주는 스냅샷과 같을 뿐, 학생의 숙지 여부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수학이나 과학처럼 기초 개념에 기반하여 그 다음 내용을 배우는 것이 필수적인 학문들은 반드시 이러한 마스터 학습 방식으로 접근되어야 하며, 이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 학생들의 능력은 결국 스위스 치즈처럼 군데군데 구멍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칸 아카데미의 가장 혁신적인 차별점은 무엇보다 전통적인 교실의 개념을 무너뜨리고, 교육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점일 것이다. 유튜브에 강의를 올리면서 전 세계 선생님들로부터 다양한 피드백을 받았던 칸은 실제로 실리콘 밸리의 로스 알토스(Los Altos) 지역 교육청과 협력하여 칸 아카데미를 활용한 교육 실험을 진행했다. 5학년과 7학년 학생들을 각각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 대해서는 수업시간에 강의를 듣고 집에 가서 숙제를 해오는 일반적인 방식을 반대로 적용한 것이다. 칸의 동영상을 시청하고 내용을 스스로 학습하는 것을 숙제로 받은 아이들은 교실에 와서 선생님과 문제를 푼다. 이에 대해 살은 ‘교실을 뒤집는다(flip the classroom)’고 표현하는데, 즉 선생님 1명이 25명의 아이들에게 동일한 내용을 전달하는 ‘one-size-fits-all’ 모델을 거꾸로 한 것이다. 교실에서 각자의 진도에 따라 문제를 푸는 아이들은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 선생님에게 혹은 이미 해당 내용을 마스터한 옆 친구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실험의 목표는 ‘교실의 인간화(humanize the classroom)’인데, 즉 선생님과 학생의 일대일 학습, 또 학생과 학생 간의 동료 학습(peer learning)을 장려함으로써 보다 많은 인간적인 시간(human time)과 상호 교류를 촉진하는 것이다. 보통 교육 환경의 개선점을 논의할 때 교사 1인당 학생 수라는 지표를 활용하는데, 이에 대해 살만 칸은 학생 1인당 교사와의 가치 있는 인간적인 시간(the ratio of a student to the amount of valuable hu-man time with a teacher)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제시한다. 웹사이트 또한 이러한 상호 학습이 가능하도록 각 동영상마다 댓글로 질문하고 사람들이 서로 답변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으며, 게임적인 요소를 활용해 열심히 강의를 듣거나 답변을 하는 사용자에게는 포인트, 배지, 리더보드 게시 등의 보상을 통한 동기 부여를 제공한다. 배우고 싶은 사람 뿐만이 아니라 배운 것을 나누고 싶은 사람 또한 멘토로 웹사이트에 등록하여 자신의 자녀, 이웃, 사촌, 모르는 이용자를 코칭할 수도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코치들의 포인트를 보고 선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살만 칸의 비전과 혁신이 다른 어느 곳보다 실리콘 밸리에서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0~2011년 세계 경제 포럼이 발행한 글로벌 경쟁력 리포트에 따르면 미국은 수학과 과학 교육에 있어 전 세계 52위를 차지했다. 글의 초입에서 밝힌 칸 아카데미의 든든한 후원자들, 구글과 오라클, 빌 게이츠, 도어 부부와 같은 기술 업계의 선진 리더들은 이러한 상태에 놓인 미국의 공교육이 앞으로 그들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해 우려하며, 이에 대한 선제적인 투자 관점에서 칸을 후원하는 것이다. 칸 아카데미가 제공하고 있는 학생들의 각종 데이터, 예를 들면 학생들이 어느 부분에서 막히고, 어떤 속도로 내용을 익히는지, 몇 문제를 풀고 나서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는지, 어떤 문제를 가장 많이 틀렸는지 등의 정보는 선생님이 학생 개개인을 어떻게 지도하고 이끌어야 할지에 대한 길잡이가 됨으로써 더 나은 학생들의 학습을 유도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미래의 교육 현장을 개선하고 혁신하는데 활용될 수 있다.

살만 칸의 담대한 실험, 
세상에서 가장 큰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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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16일 개설된 칸 아카데미의 유튜브 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구독자는 83만 명, 동영상 총 조회수는 약 2억 5천만 건에 달한다. 칸 아카데미는 수학 뿐만 아니라 이제 생물학, 화학, 물리, 경제학과 역사까지 다루며, 누구나 어디서나 학습할 수 있는 월드 클래스(world-class) 교육이라는 미션에 따라 스페인어, 힌두어, 중국어 등으로 컨텐츠를 번역하는 작업도 진행중에 있다. 오늘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칸 아카데미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성취감을 얻어가는 가운데 살만 칸은 더 담대하고 혁신적인 실험을 꿈꾸고 있다. 2012년 9월에 나온 살의 저서 “The One World Schoolhouse: Education Reimagined”는 그의 담대한 비전을 엿볼 수 있는 책으로, 그는 현재 자신의 철학을 반영한 학교 설립을 꿈꾼다. 뒤집힌 교실, 칸 아카데미만의 커리큘럼, 그리고 나이에 따른 학생들을 구분짓지 않음으로써 필요한 공부는 살의 동영상으로 하고 교실에서는 학생들의 창의성과 논리력을 키울 수 있는 활동과 배움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 칸 아카데미는 작년부터 여름 캠프를 통해 다양한 학생들을 받고, 이들을 한데 모아 여러 교육 활동을 진행하며 가능성을 타진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누구나 어디서나 즐겁게 공부할 수 있다는 새로운 길을 보여준 진짜 공부의 신 살만 칸. 아무리 수학을 잘하는 그더라도 자신이 가져온, 또 앞으로 만들어낼 임팩트는 계산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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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Thoughts for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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