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져가는 ‘놀이'의 개념, 이대로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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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위 두 사진은 ‘숙제 못한 초딩'이라는 이름으로 한 때 인터넷을 달궜던 사진들이다. 학교 숙제를 끝내지 못했던지 이동하는 지하철 안에서 책을 펼치고 주저앉아 열중하고 있는 초등학생들의 모습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했지만, 필자의 경우 그것은 쓴웃음에 가까웠다. 정확한 상황 설명은 써 있지 않아 추측할 수 밖에 없겠지만, 이동하는 시간 중에도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을 아이들을 바라보는 심정은 되려 안타까움에 가까웠다. 물론 이 아이들이 필자를 보고 한심하다고 생각할런지 모르겠으나, 또래 친구들과 뛰어 놀거나 함께 하는 운동을 즐기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그들의 생활에 대한 걱정은 금할 수 없었다. 실제로 투니버스와 밀워드브라운 미디어리서치가 서울 및 5대 광역시 거주 6~13세 어린이 500명과 어머니 5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인 ‘2012 대한민국 어린이 백서'에 따르면 어린이들은 공부와 성적(27%)에 못지 않게 친구들과 놀 시간이 부족한 것(28%)을 가장 큰 고민으로 꼽았다고 한다.

미국의 상황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물론 그 이유는 조금 다른데, 이들은 학업 부담 보다는 컴퓨터나 TV, 음악 감상 등 혼자 즐길 수 있는 여가에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 친구들과 놀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Kaiser Family Foundation의 2010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미국 내 8세~18세 사이의 아동 및 청소년들은 하루 평균 7시간 38분을 컴퓨터를 하거나 TV를 보는데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2005년의 같은 통계치인 6시간 21분에서 약 20%나 증가한 결과로서, Kaiser Family Foundation은 핸드폰 및 iPod과 같은 모바일 기기의 사용 증가를 그 주요한 원인으로 꼽은 바 있다. 컴퓨터, TV 및 비디오 게임의 과도한 사용이 초래할 수 있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사교성 부족 등의 위험에 대한 언급은 차치하더라도, 곧바로 떠올릴 수 있는 문제점은 바로 이것이다: “아이들이 과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은 있는 걸까?”

실제로 Pooja S. Tandon 등이 the Archives of Pediatric & Adolescent Medicine에 최근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취학아동의 절반에 이르는 약 49%가 밖으로 나가서 또래친구들이나 부모와 함께 놀거나 운동하는 시간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의 대다수에 해당하는 20대 이상의 어른들이 생각하는, 뒹굴고 어울려 '함께'하는 활동으로서의 '놀이'는 더 이상 그 정의를 다음 세대의 청소년들과 공유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일까. 

‘미국 내 모든 아동들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놀이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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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BOOM!의 창업자인 대럴 해먼드(Darell Hammond)는 아이들이 밖에서 친구들과 놀 시간이 부족한 상황뿐만 아니라 놀 수 있는 '공간'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 문제 의식을 품었다. 그는 1995년 워싱턴 D.C.로 이사하자마자 마땅한 놀이터가 없어 폐차 속에서 놀다가 질식사한 두 아이의 기사를 워싱턴 포스트에서 읽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놀이터가 있었다면 이런 사고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생각 끝에 해먼드는 워싱턴 D.C. 남동부에 Home DepotMinkoff Company의 협찬을 받아 5일 동안 500명 이상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놀이터를 만든 후, 사업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Home Depot의 자금 지원을 받아 1996년 4월에 KaBOOM!을 비영리법인 형태로 설립했다.

KaBOOM!은 ‘미국 내 모든 아동들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놀이터를 만든다'는 미션 아래 놀이의 부족이 초래할 수 있는 다음의 상황에 주목한다.  

 

[tabs type=”horizontal”] [tabs_head] [tab_title]놀이의 부족이 초래할 수 있는 상황[/tab_title] [/tabs_head] [tab]

  • 소아비만
  •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 불안장애, 우울증
  • 폭력성 및 기타 행동 발달 장애
  • 사회성, 인식 및 창의성 발달 둔화
  • 도시 및 교외의 녹지 공간 부족
  • 파편화된 지역 사회
  • 학교 교육 실패 및 지속 불가

[/tab][/tabs]

 

이러한 흐름을 바탕으로 미국 빈곤지역 내에 놀이터를 건설해 오던 KaBOOM!은 2004년에 차후 조직의 중요한 전략적 기반이 되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다른 비영리 조직이 그래왔던 것처럼 지역마다 지부를 만들어 자체 인력을 투입해 놀이터를 만드는 대신에, 지역 커뮤니티에 대부분의 권한을 위임하여 이들과 ‘함께'하는 모델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3가지 혁신적인 전략을 수립했다. 시행착오를 통해 수립된 그 세부 내용은 바로 아래와 같다.

 

[tabs type=”horizontal”] [tabs_head] [tab_title]혁신 전략 수립[/tab_title] [/tabs_head] [tab]

  • 혁신적이고 아이들에 의해 주도되는 놀이 공간을 설립한다. 그 과정에 공간을 실제로 이용하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이들이 생활하는 이웃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질까지 개선할 수 있는 커뮤니티 빌딩 모델을 활용한다.
  •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직접 참여하여 그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 및 분야 간의 지식과 도구의 공유를 진작한다.
  • 연구, 분석, 정부 정책, 그리고 커뮤니티 참여를 통해 하나의 놀이터를 넘어선 광범위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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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KaBOOM!의 놀이터 설립과 커뮤니티 빌딩, 그 Dual Mission (출처: KaBOOM! Playgrounds that build communities: A Knight Foundation Evaluation)

 

미셸 오바마 영부인도 참여하는 KaBOOM!의 놀이터 만들기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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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에는 Home Depot와 협력을 통해 2,500만 달러 규모의 ‘1,000일간 1,000개의 놀이터(1,000 Playgrounds in 1,000 Days)’ 이니셔티브를 런칭하고 2008년까지 진행해왔다. 이 기념비적인 이니셔티브는 2008년 4월 10일에 1,000번째 놀이터를 만들며 2년 9개월간의 장정을 끝냈다. 각 놀이터는 Home Depot의 놀이터 조성 기부금 47,200달러와 놀이터가 들어설 지역 기반의 기업, 비영리조직 등의 커뮤니티 파트너로부터 10,000달러를 모아 약 57,000달러의 예산으로 설립되었다. 이니셔티브 기간 동안 Home Depot의 99,555명의 직원들은 총 954,435시간을 자원봉사활동에 쏟았고, 만들어진 놀이터의 혜택을 받는 아동들은 619,300명으로 추산된다.  또한 2005년 12월에는 허리케인 카트리나 및 리타 피해를 입은 지역에 100개의 놀이터를 세우는 ‘Operation Playground’ 캠페인을 벌였다. 자연 재해로 인해 피폐화된 지역과 생활 환경 속에서 손상되기 쉬운 아이들의 감성과 즐거움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목적이었다.

KaBOOM!은 17여년간의 사업을 해오며 지역 커뮤니티 구성원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업, 비영리 단체 및 재단과 협력을 해왔다. Home Depot는 KaBOOM!의 설립 당시부터 파트너로 참여, 건축자재를 제공하고 자사 직원들이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사회공헌활동과 연계한 왕성한 활동을 벌여왔다. 이 외에도 Disney, jetBlue, Zynga 등의 유수 기업이 참여했다. 특히 세계 유수의 모바일 게임 업체 Zynga자원봉사활동뿐만 아니라 자사의 CityVille 게임에 KaBOOM!의 미션을 알리고 펀드레이징을 하기 위한 목적에서 실제로 놀이터를 만들 때 사용되는 것과 동일한 디자인으로 놀이터를 만들 수 있는 프로모션을 진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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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게임 CityVille 과 KaBOOM!의 파트너십 (출처: blogcdn)

 

이렇게 커뮤니티 참여 및 지역 재생에 수년간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성과를 인정받아, KaBOOM!은 2007년에 그 미션을 미국 전지역으로 확대하고 놀이터에서 확대된 지역 재생 및 개발의 이니셔티브인 Playmaker NetworkPlayful City USA를 설립하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Do-It-Yourself Playground Planner, Online Trainings, Online Toolkit 등 놀이터 설치와 관련된 매뉴얼 및 교육자재도 보급하며 놀이와 관련된 이니셔티브의 확대에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미셸 오바마 영부인도 2011년 6월 15일에 있었던 KaBOOM!의 2,000번째 놀이터 설립식에 참석하여 직접 자재를 나르고 놀이기구를 조립하며 KaBOOM!의 정신을 널리 퍼뜨릴 수 있는 확장 방안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KaBOOM!의 2000번째 놀이터 설립을 축하하는 미셸 오바마

 

지역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놀이터, 그리고 살기 좋은 동네의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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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BOOM!이 놀이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는 특별함이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놀이터를 실제 이용할 아동과 청소년들이 놀이터를 어떻게 만들지 계획하는 단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이다. 참여하는 역할도 어른들이 짜 놓은 놀이터 및 놀이기구 계획에 대해 좋다, 아니다는 의견만 밝히는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놀이터 설립 위원회의 한 멤버로서 자신들이 원하는 놀이를 창의적으로 구상하고 이에 대해 다른 팀원들에게 발표하며, 그 놀이를 위해 필요한 놀이기구 및 설비에 대해서도 구상하는 온전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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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자신이 놀고싶은 놀이터의 디자인을 제안하는 아이들 (출처: 좌(뉴욕타임즈), 우(mLive))

 

KaBOOM!의 놀이터 설립은 이렇게 실 사용자인 아동과 청소년뿐만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 내의 청소년 관련 비영리조직, 각급 학교, 도서관, 사회복지관, 청년회, 주민 반상회, 학부모회 등 다양한 조직을 아우르며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직접 협업을 통해 놀이터를 짓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David Bornstein은 The New York Times 칼럼에서 “이것이 바로 KaBOOM!이 타 조직과 차별화되는 모델을 가지게 된 이유”라며, “커뮤니티 내에 리더십의 기운을 불어넣고 자신의 삶의 터전을 스스로 바꿔나갈 수 있다는 믿음과 에너지를 촉발시키는 모델"이라는 찬사를 보낸 바 있다. 놀이터를 만드는 데 드는 재원을 대부분 기업과 비영리 재단에서 모금하는 KaBOOM!의 경우, 실제로 모든 인원을 자사가 고용하여 진행하는 편이 더욱 비용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고 커뮤니티 구성원들과 함께 하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자신의 생활 공간 내 놀이 공간을 직접 설계하고 만드는 경험을 통해 리더십, 자율성, 주도성 등을 깨치고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값진 과정도 함께 제공해 온 것이다. 놀이터가 다 만들어진 이후에도 설립 과정에 참여했던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놀이터를 계속해서 유지 보수하고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함양하여, 사후에도 놀이터를 개선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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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KaBOOM!의 커뮤니티 내 놀이터 설립 프로세스 요약 (출처 : KaBOOM! Playgrounds that build communities: A Knight Foundation Evaluation)

 

아울러 KaBOOM!은 놀이터를 설립할 지역을 선정할 때도 미 연방정부가 빈곤계층 아동들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무료/할인 점심 제공 프로그램의 수혜 자격을 충족하는 아동의 비중이 70% 이상인 곳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왔다. 그리고 놀이터를 만드는 것에서의 한계를 인식하고 놀이 자체에 대한 연구 개발을 통해 잊혀진, 혹은 새로운 유형의 놀이를 기획하고 이를 놀이터 설립 계획 단계에서부터 반영하고 있다.

함께하는 경험의 공유, 커뮤니티 빌딩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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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서두에서 언급했던 지하철에서도 숙제를 하는 초등학생의 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차는 우리네들의 공통된 우려는 ‘저 나이 때는 한창 친구들이랑 놀아야 한다'는 (우리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당위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저녁을 먹기 위해 집에 들어오라고 엄포를 놓은 시각이 될 때까지 동네 친구들과 땀을 뻘뻘 흘리며 놀아 본 유년의 기억을 간지하고 있는 우리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놀이가 가지는 가치를. '함께' 놀지 못하고 학업의 부담에만 치이면서 큰 개인들의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 수 있을까라는 염려와 더불어 그들이 모여 이뤄나갈 사회를 암울하게 그릴 수 밖에 없는 것은, 지나치게 비관적인 우려인 것일까.  

현재 우리의 놀이터를 보면 그 갯수가 줄어갈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모여서 놀기에 적합하지 않은 콘크리트 바닥, 천편일률적인 놀이기구만이 갖춰져있다. 더구나 놀이터가 지역 사회의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부의 여유 공간에 위치하면서 사람들과 괴리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며, 오히려 그곳이 각종 범죄의 온상이 되어 CCTV를 설치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물론 미국의 공원이나 놀이터가 모두 이상적인 모습만은 아닐테고, 한국에서도 어린이들이 꾸미는 공원 등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치안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결국 그 공간이 활성화 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여전히 난제로 남는다. 그렇기에 더욱이, KaBOOM!의 다양한 커뮤니티 내 조직들과 구성원들이 놀이터를 함께 만드는 경험을 공유하는 모델이 가치를 가진다. 이웃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땀을 흘리며 자재를 나르고 기구를 설치하는 시간 속에서 놀이터가 온전히 '우리'의 것으로 자리 잡을 수 있으며, 아이들이 이러한 공간을 경험할 때 비로소 '나' 뿐만이 아니라 '우리'를 아는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것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참고자료

KaBOOM! 홈페이지
KaBOOM! Playgrounds that build communities: A Knight Foundation Evaluation
아이들을 “위험한 놀이터”에서 놀게 하라, WSJ
Parents, kids and outdoor play, Jennifer LaRue Huget, The Washington Post
어린이 셋중 한명 "요즘 최대 고민은 '놀 시간 부족'", 조선일보 
Mobilizing the Playground Movement, David Bornstein, The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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