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잇, 그 출생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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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미국 3M의 연구원이었던 스펜서 실버(Spencer Silver)는 쉽게 떨어지는 접착제를 개발했다. 접착제라는 것은 잘 붙는 것이 본래의 목적인데 붙었다가도 쉽게 떨어지는 이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회사는 원래의 용도를 고려했을 때 실용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실버는 포기하지 않고 이후 기회가 될 때마다, 공식적인 세미나와 개인적인 대화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이 아이디어를 설파하고 다녔다.

영영 빛을 못 볼 뻔한 이 아이디어는 한 교회 성가대원의 불만을 만나며 전환을 맞게 된다. 3M의 또 다른 직원이었던 아트 프라이(Art Fry)는 1974년 실버의 세미나를 듣다 이 별난 접착제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영감을 받는다. 프라이는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 성가대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매번 찬송가 책 사이에 끼워 놓았던 종이가 빠지는 바람에 악보를 놓치는 데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이었다. 찬송가 책의 얇은 종이에 잘 붙으면서도 떼어낼 때는 종이가 찢어지지 않는 책갈피가 없을까 고민하던 그에게 실버의 접착제는 획기적인 솔루션으로 다가왔고, 이후 그는 3년 동안 연구한 결과 오늘날 포스트잇을 탄생시키게 된다.  

사내 기업가정신과 혁신, 조직 환경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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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처럼 이렇게 기업 내부 직원들의 자발적인 아이디어와 프로젝트에서 탄생한 제품 혹은 서비스를 우리 주변에서 또 찾아볼 수 있다. 구글의 지메일(Gmail) 서비스 또한 위와 유사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사례이다. 구글의 엔지니어였던 폴 부크하이트(Paul Buchheit)는 본래의 검색 엔지니어링 업무 외에 단순히 “기존의 이메일이 오랫동안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sort of unhappy with email for a long time)” 이러한 Gmail의 프로토타입을 스스로 만들었고, 그의 동료들은 이 새로운 솔루션에 지지를 보냈다. 오늘날 Gmail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이메일 서비스로, 4억 명 이상의 사용자 수를 자랑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대개 창의적인 아이디어, 혁신적인 서비스를 통한 새로운 가치 제안은 뛰어난 기업가가 이끄는 벤처 조직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또 차고나 기숙사 방에서 시작된 아이디어와 사업가들이 IPO를 통해 억만장자가 되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실리콘 밸리 식의 성공 스토리 때문인지, 우리는 혁신, 창의, 위대함 등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종종 남들이 보지 못한 비전을 가진 개인의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에 주목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시스템과 구조를 갖춘 기업이라는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일하는 고용인(employee)이다. 그리고 이렇게 기업에 속한 구성원들 또한 스스로의 비전과 의지를 가지고 새로운 가치 제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들을 지칭하는 개념을 기업가(entrepreneur)라는 단어를 살짝 비튼 사내 기업가(intrapreneur)라고 하는데, 오늘날처럼 새로운 성장의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심화된 경쟁 시대에 많은 기업들이 사내 기업가정신(intrapreneurship)에 대해 주목하는 것은 굳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내 기업가정신에 대한 보다 자세한 [tooltip text=”정의” gravity=”n”] “Intrapreneurship Conceptualizing entrepreneurial employee behaviour”, Jong & Wennekers, May 2008 [/tooltip]를 들여다보자. “사내 기업가정신은 강제가 없음에도 새로운 일을 수행하기 위한 조직 내 종업원들의 이니셔티브를 일컫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강제가 없다”는(without being asked to do so) 점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 조직이 시키는 일이 아닌 프로젝트에 자원과 노력을 투입하는 것, 이는 기업의 기업가정신(Corporate Entrepreneurship)과 사내 기업가정신을 가르는 결정적 차이점으로 볼 수 있다. 기업의 기업가정신은 흔히 경영진들의 비전과 전략에 따라 탑다운(top-down) 방식으로 발현되며, 일반적인 기업 내 ‘신사업 개발’과 같은 이름의 팀에서 수행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사내 기업가들은 조직의 직무가 요구하는 과업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것, 창의성, 혁신 등의 가치에 보다 더 집중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결과물은 보다 강력한 파급력을 발휘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할 것은 이처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조직의 문화 혹은 제도적 뒷받침이다. 실제로 포스트잇의 탄생을 가능케 했던 스펜서 실버의 접착제와 아트 프라이의  연구는 모두 3M이 이미 1948년부터 마련한 15% 프로그램 덕택이었다고 전해진다. 15% 프로그램이란, 기술직 종업원들은 업무 시간의 15%를 직무 외의 연구나 개발 활동에 자유롭게 할애할 수 있는 3M 고유의 제도를 의미한다. 또한 Gmail의 탄생은 구글이 이와 유사한 20%룰을 정립하는데 기여했다고 전해지는 가운데 이 외 많은 기업들이 유사한 가외 프로젝트(side project) 또는 자기 계발 시간을 업무 시간의 일부로 인정하는 조직적인 제도를 갖추고 있다.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임팩트 창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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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러한 사내 기업가정신을 활용하여 사회에 바람직한 임팩트를 창출할 수는 없을까? 큰 비전과 창의적인 솔루션을 갖춘 사회적 기업가의 탄생도 의미가 있지만 비교적 적은 리스크를 가진 안정적인 환경에서, 가용할 수 있는 조직의 자원과 지원을 활용하여 의미 있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또 임직원의 자원 봉사와 재능 기부를 통해서도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지만, 이를 넘어 보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솔루션을 만들고 여기에 공익적인 가치까지 담는 새로운 유형의 사내 기업가들이 많아진다면 이는 분명 기업과 사회 양쪽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이러한 의미 있는 사내 기업가정신이 잘 투영된 사례를 소개한다. 삼성전자 직원들이 모여 출발한 아이캔(eyeCan)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비록 사내 기업가정신을 통한 임팩트 비즈니스의 실현이라는 주제가 낯설고 어렵지만, 아이캔 프로젝트는 분명 이에 대해 다양한 시사점을 보여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사례로 판단된다. (아이캔 프로젝트에 대한 내용은 프로젝트 팀원이었던 정진용 책임, 이상원 선임과의 실제 인터뷰, eyeCan 프로젝트 웹사이트인 www.eyecanproject.org 및 기타 사측 보도 자료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힌다.)

CASE STORY: eyeCan, 눈으로 만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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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캔은 삼성전자 임직원 5명(조성구 책임, 정진용 책임, 유경화 과장, 이준석 대리, 이상원 선임)이 모여 개발한 안구 마우스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단순히 안구 움직임에 따라 작동하는 마우스라고 하기 보다는, 마우스 기능과 더불어 특정 서비스를 별도 앱을 통해 눈의 움직임으로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안구 입력 장치(eye input device)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즉, 눈을 매개로 하는 인터페이스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아이캔은 루게릭병을 비롯한 각종 근육 질환으로 오직 눈만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 사람들에게 이들이 쉽게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는 장치와 프로그램을 마련해줌으로써, 말 그대로 눈을 통해 할 수 있는(eye can) 모든 경험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5만 원이 안되는 재료비로, 공개된 매뉴얼에 따라 하드웨어를 만들고 소프트웨어를 다운받아 설치하면 된다. 천만 원 이상으로 알려진 기존 안구마우스의 가격을 감안한다면 이는 파격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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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출처: Flickr.com @cesarharada.com

 

그렇다면 스마트폰도, 반도체, TV도 아닌 아이캔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2011년 5월, 조성구 책임과 정진용 책임은 근육 무기력증에 걸린 그래피티 아티스트를 위해 안구 인식 디바이스 아이라이터(EyeWriter)를 개발하고 그가 다시 예술 활동을 가능케 한 믹 애블링(Mick Ebeling)의 테드(TED)영상을 접했다. 이들은 전신마비 환자들도 눈으로 마우스를 움직여 컴퓨터 이용이 가능한 도구를 만들자는 영감을 얻었고 이에 팀이 꾸려져 작업이 시작되었다. 2011년 여름부터는 본격적으로 업무 외 시간에 장치와 소프트웨어 개발을 진행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한국장애인개발원 및 경기도 재활공학서비스연구센터 등의 조직과 연결되어 실제 장비를 파악하고 환자와 실험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2011년 가을, 삼성전자는 임직원들의 재능과 삼성전자의 기업 역량을 활용하면서 동시에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창의 개발연구소라는 새로운 제도를 만든다. 아이캔은 이 프로젝트의 1호 과제로 선정되었고, 팀은 원래 업무 대신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본격적으로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2011년 11월부터 공식적으로 꾸려진 이 팀은 이후 2012년 3월 말까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 결과로 현재 웹사이트에 공개된 아이캔의 매뉴얼과 소스코드를 완전히 오픈하게 된다. 공개된 아이캔의 제작과 활용법은 누구나 비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삼성전자는 현재 한국장애인개발원과 MOU를 맺고 “Eye Can Change the World”라는 보급 사업을 펼치고 있다. 또한, 창의개발연구소 제도는 2호 과제로 시각장애인용 자전거 “iRider”를 진행하였으며 현재는 이 제도의 운영 경험으로부터 C-Lab(창의개발센터)를 전담으로 운영하는 팀이 정식 조직으로 생겼다고 한다.

eyeCan의 시사점

여태까지는 아이캔 프로젝트의 탄생과 발달, 그리고 결과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를 소개했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아이디어
가 처음 공유되고, 팀원들이 모이고, 실제 테스트를 거친 뒤, 본격적인 개발 전담팀이 꾸려지고,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마무리 된, 그리고 그 이후를 포함하는 이들의 긴 여정에는 사회적기업가가 아닌 조직의 구성원들이 의미 있는 임팩트를 만들어 내는데 우리가 기억해둘 만한 좋은 시사점이 곳곳에 숨어있다. 또 이 시사점들은 조직의 구성원들인 개인을 위한 시사점과 조직을 위한 것으로 다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이제부터 차례차례 아이캔의 스토리를 면밀히 살펴보자.  

 

1. Spread your word, Leverage the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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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아이캔 프로젝트는 테드 영상을 본 두 엔지니어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고 서술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기회에 이 영상을 보게 되었을까? 삼성전자에는 몇 년 전부터 직원들끼리 모여 테드 영상을 보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살롱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이러한 내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약 15~20명 정도 적정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 간의 모임이 이미 형성되어 있었는데, 2011년 5월 처음 조성구 책임과 정진용 책임이 이들과 아이라이터의 영상을 공유하면서 모두 DIY인 아이라이터를 한번 만들어 보자는 제안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실제 제작은 3명을 중심으로 진행됐는데, 처음 이들의 목표는 크게 구체적이지 않았다. 하드웨어만 만들어보고 이 결과를 50~60명 정도 되는 나머지 커뮤니티와 공유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아이라이터를 만들자, 이들은 아이라이터가 안구마우스가 아니라 특정 애플리케이션에서만 작동하도록 코딩이 되어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를 실제 마우스 기능으로 바꾸어 보자는 아이디어가 제시되었고, 이때쯤 합류한 이상원 선임이 실제 마우스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작업을 담당하기 시작한다. 또 이들은 아이캔 프로젝트를 봉사활동으로 해나가면서 삼성사회봉사단의 소개를 통해 한국장애인개발원 및 경기도 재활공학연구서비스센터 등 전문 조직의 도움을 받아 실제 제품을 테스트 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된다. 이러한 작업의 발전과 결과는 꾸준히 주변의 커뮤니티에 공유되었고, 해당 프로젝트는 2011년 8월 6일 테드x삼성에서 발표도 하게 된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내부 조직 구성원들과 자신의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공유하라는 점이다. 평소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과의 커뮤니티를 활용하면 아이디어를 처음 포착하고, 이를 주변에 알리고, 또 필요한 피드백과 인력, 자원을 구하기도 훨씬 쉬워진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테드 살롱, 테드x 발표, 그 외 기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주변과 공유하지 않았더라면 창의개발연구소의 1호 과제로 선정되는 데 필요했던 조직 레벨의 인지(recognition)를 받을 수 있었을까 한다. 이들의 1호 과제 선정은 아이캔 팀의 이야기가 전사적으로 퍼져 나가는 가운데 마침 새로운 제도의 도입을 앞둔 사측의 니즈가 잘 맞아떨어진 좋은 타이밍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보충한다).

 

2. Find the right members for your t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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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캔 팀은 총 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흔히 성공적인 조직의 특징으로 다양성(diversity)이라는 가치를 언급하는데, 아이캔 팀은 언뜻 보면 유일한 여성멤버였던 유경화 과장 외에는 모두 엔지니어 출신들로 이와는 약간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취재를 통해 듣게된 바에 따르면 실제 팀에서 엔지니어의 역할을 수행했던 팀원은 조성구 책임과 이상원 선임 두 명 정도로, 정진용 책임과 유경화 과장은 주로 대외 홍보/협력, 네트워킹에 주력하면서 이 프로젝트에 비엔지니어링적 가치를 어떻게 담을 것인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고민했다고 한다. 한편 이준석 대리는 UX와 서비스 디자인의 측면을 고민했으며, 조성구 책임이 하드웨어 엔지니어링과 전체 프로젝트 관리, 이상원 책임은 소프트웨어 설계를 담당했다.   

인터뷰이들은 아이캔 팀원들 각자 자신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평소의 업무와는 다르지만 그간 맡아보고 싶었던 역할과 직무를 중심으로 멤버 다섯 명의 역할이 적절하게 나뉘어 지면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대답했다. 이들은 경험적으로 엔지니어 외 다른 직군의 사람이 많아야 프로젝트가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 같다고 밝혔다. 엔지니어는 보통 기술을 가능케 하는 데에만 신경을 쓰기 마련인데, 여기서 놓치고 있거나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다른 관점의 팀원들이 보완해준다는 것이다. 

기업의 가치 사슬이 경영 활동과 관계된 여러 요소로 조화롭게 이루어져 있듯, 과제를 성공시키기 위한 팀 빌딩 또한 여러 기능(discipline)을 할 수 있는 멤버들로 구성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또한 아이캔 팀 멤버들이 이렇게 적절한 구성을 하게 된 것은 앞서 언급한 첫 번째 시사점과도 연결되어 있다. 테드x삼성 커뮤니티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멤버들이 의기투합한 것이다. 커뮤니티의 힘과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안정적인 팀 빌딩을 이룬 예라고 할 수 있다.  

 

3. Be proactive, stay persis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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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기업가정신의 정의와 관련하여 앞에서 참조한 Jong & Wennekers의 보고서는 사내 기업가의 행동적 특징을 몇 가지 제시하고 있는데 이 중 선제적으로 행동하고(proactive) 끈기있는(persistent) 특성은 아이캔 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보통은 기회 포착 단계, 즉 초기에 자주 나타나는 이 선제적 행동(proactiveness)의 태도는 아이라이터라는 아이템을 처음 접하고 이를 스스로 제작해 보고자 결심한 프로젝트의 태동 단계, 또한 본격적인 제작을 위해 위해 팀을 꾸리고,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면서 프로젝트의 목표와 서비스 내용을 구체화해가는 과정에서도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더 중요한 점은 끈기를 지속하는 것이다. 아이캔 프로젝트의 경우, 아이디어의 구현과 개선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고비는 아마 테드x삼성 발표 직전에 있었던 첫 번째 아이캔 테스트였을 것이다. 

국내 최초로 기업이 라이센스를 취득한 케이스인 테드x삼성은 2010년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약 3,5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는 가장 큰 사내 커뮤니티 중 하나이다. 2012년 8월 6일, 테드x삼성에서 아이캔 프로젝트의 성과를 발표하게 된 팀원들은 아이캔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급하게 자리를 마련하여 첫 실전 테스트를 진행한다. 팀은 경기도 평택의 한 루게릭 환자를 소개받아 직접 방문을 하게 되었는데, 이 환자는 병이 많이 진행되어 눈동자 외에는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매우 쇠약한 중증의 환자였다고 한다. 팀원들은 직접 집에 방문하여 세 시간 정도 테스트를 하였으나 실제 아이캔 서비스 수혜자의 실제 생활 환경(환자는 침대에 누워 있으며, 주변에는 간병인과 각종 의료 보조 기구가 항상 필요하기 때문에 TV와 컴퓨터 화면은 대개 천장이나 멀리 높은 곳에 배치되어 있는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탓에 거의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돌아온다. 마우스를 움직이기는커녕, 눈동자 움직임을 인식할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결국, 아이캔 팀은 성공 대신 실패 이야기를 공유하게 되었고, 이후 동일한 환자와 몇 번 더 테스트를 진행하였으나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업무 외 시간에만 실험과 개발이 가능했던 팀원들은 좀처럼 성과가 나지 않자 점차 지치게 되고 이들은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여태까지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만 오픈하고 끝낼지, 아니면 끝까지 진행하여 실제 사용이 가능해질 때까지 성능을 높일지 고민을 하게 된다. 프로젝트가 기로에 서 있던 2011년 가을, 이들은 창의개발연구소의 첫 도입을 한창 준비하고 있던 인사팀과 연결이 되고 1호 과제의 선정을 제안 받게 된다. 

아이캔 팀원들은 사내에서 적정기술 및 기타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봉사, 프로젝트 그룹이 여럿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자신들이 1호 과제로 선정되어 파격적 지원을 받게 된 이유에 대해 타이밍이 좋았다고 밝힌다. 당시 기술 선도 기업으로서 삼성전자의 가치와 역량을 담을 수 있는 스마트하고 의미 있는 사회 공헌, 그리고 조직원들의 창의력 증진을 지원코자 하는 조직의 니즈와 더불어 스마트폰 개발이 치열해지는 비즈니스 환경을 감안했을 때 사용자 경험(UI) 및 접근성 이슈와도 관계있는 아이템의 속성 등이 잘 맞아들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적인 요인과 더불어 끈기 있게 프로젝트를 진행한 팀원들의 행동적 측면 또한 주목해 볼 만하다. 즉, 테드에서의 성과 발표라는 당장의 목표가 종료된 이후 실제 테스트가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환자를 다시 찾아 꾸준히 아이템의 개선 가능성을 시도한 아이캔 팀의 헌신은 간과하기에 아쉬운 요소이다. 여담으로 당시 환자의 가족들은 거듭되는 실패에 별다른 성과 없는 실험이 오히려 환자 건강에 해를 끼칠까 미안해하는 팀원들에게 포기하지 말고 꼭 좋은 결과물을 내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응원을 건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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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2012년 TED Active에 참여한 정진용 책임 (출처: Flickr.com @TED Conference)

 

4. Foster a culture in your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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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아이캔 팀을 중심으로 조직의 구성원들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사점을 제공했다면 이제부터는 조직의 의사결정권자 및 경영진들이 참조할 수 있는 인사이트를 살펴보고자 한다. 

내부 구성원들을 통해 보다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임팩트 창출을 원하는 조직은 우선 구성원들이 여러 활동을 펼칠 수 있고, 또 이를 장려하는 조직 환경과 문화를 갖추는 것이 첫 번째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는 사내 임직원들의 봉사활동을 장려하고 이를 지원하는 규정을 가지고 있는데, 회사가 직원들에게 봉사 활동을 강제하기보다 직원들 스스로 아이템을 선정하고 이를 사측에 등록하면 봉사 활동 시간을 인정해주는 것은 물론 소정의 지원이 제공되기도 한다. 봉사 활동에 대한 임직원들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회사의 자원을 내어주는 최소한의 제도적 환경이 구비되어 있는 셈이다. 여기에 일명 ‘100:20 룰’로 알려진 삼성전자의 독특한 문화도 있는데, 이는 업무에 100%를 다하고, 업무 이외 시간의 20%를 의미 있는 활동에 쓰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리고 창의개발연구소 1호 과제로 선정되기 전까지 아이캔 팀원들은 이러한 100:20 룰에 따라 봉사 활동의 일환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활동을 지원하는 사회봉사단의 도움으로 한국장애인개발연구원 및 경기도 재활공학연구서비스센터와 연결될 수 있었다고 한다. 조직의 이러한 적절한 지원과 개입이 없었다면 실제 환자들과 접점을 가지고 있는 외부 전문조직과의 연결은 더욱 어려웠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환자들이 실제로 쓸 수 있는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러한 100:20 룰, 그리고 사회봉사단과 같은 내부 지원 조직과 같은 환경은 직원들의 재미있고 의미 있는 봉사 활동을 가능케 하는데, 아이캔 팀원들은 삼성전자 직원들이 전문성을 살려 스스로 주도하는 사회공헌 활동 그룹이 여럿 있다고 밝히며 그 예로 Big Camp for Education이라는 팀을 소개해주었다. 이 팀 또한 테드x삼성 활동을 했던 사원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한 프로젝트로, 기술을 통한 교육 혁신이라는 목표 하에 실제 학생, 교사, 개발자 등 여러 그룹이 모여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실제 수업에 도움이 되는 애플리케이션이나 서비스의 제작을 목표로 한다. 외부 기관과 협력하여 해커톤 스타일의 1박 2일 워크샵도 진행하고 있으며, 2주에 한 번씩 스몰 캠프라는 이름의 정기 모임을 진행하며 꾸준히 활동하는 가운데, 이번 봄에 있었던 북미 최대의 문화/기술 축제인 SWSX의 교육 부문에 참가하여 사례를 공유하기도 했다고 한다. 

직원들이 좋은 활동을 기획하면 이를 인정하고 지원해 주는 제도와 기업 문화도 중요하지만, 이는 이미 해당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다 유용한 환경일 것이다. 그렇다면 직원들이 먼저 사회적인 가치와 임팩트에 눈뜰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선제적으로 마련하는 것은 어떨까? 이와 관련해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적정 기술이라는 테마에 대해 원래 팀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인터뷰이들이 아이라이터를 처음 접하고 아이캔의 아이디어를 제안한 조성구 책임이 회사의 인재 지원 프로그램에 지역 선발되어 1년 간 인도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다. 지역 전문가 프로그램이라는 이 제도의 취지는 선발된 직원이 1년 동안 해당 지역에 체재하면서 그곳의 이슈에 대해 자유롭게 연구하고 탐험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한다. 이 당시의 경험을 통해 적정기술이라는 테마에 관심을 가지게 된 조성구 책임이 귀국 후 적정기술이라는 테마를 지속적으로 주변과 공유하고 나누게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유사한 관심을 갖는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형성이 된 가운데 아이캔 팀원들 또한 이러한 내부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모이게 된 것이다. 대개의 기업들은 신시장 조사, 혹은 사업 기회 발굴 등의 취지에 따라 이러한 해외 파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이마저도 경기가 어려워지면 제도를 축소하거나 없애곤 한다. 하지만 직원들의 임팩트 및 사회적 가치 추구 활동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조직이라면 굳이 해외가, 또 장기간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만나고 고민해 볼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많은 기업들이 비전으로 제시하는 바람직한 사회공헌 실천에 앞장서는 조직 문화 조성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5. Recognize and reward good practi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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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조성하는 것에 이어, 좋은 사례에 대한 보상과 지원 또한 빠져서는 안 되는 요소이다. 아이캔 프로젝트의 경우 1호 과제 선정을 통해 조직 차원의 인지와 보상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팀원들은 이때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업무에서 벗어나 독립된 팀을 꾸리고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직원들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제도의 목표였기에 프로젝트의 예산은 승인을 받아야 했지만, 이 외에는 멤버 구성에 있어서 전권 보장, 정기적인 보고와 성과 지표조차 요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팀원들은 매번 회의를 통해 만장일치에 따라 의사 결정을 내리고 수평적으로 소통하면서 자유롭게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또 좀더 적극적인 지원책으로서도 조직은 아이디어를 가진 직원들에게 조직의 더 다양한 자원과 의사결정권자들을 연결해줌으로써 이들의 임팩트가 보다 고도화되고 개선되는 새로운 길을 보여줄 수 있다. 이에 대한 예로 아이캔에 이은 창의개발연구소의 2호 과제인 아이라이더(iRider)의 탄생 과정을 들 수 있다. 아이캔 팀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도중이었던 2012년 1월, 자신들의 경험을 직원들과 나누기 위해 기술을 활용한 사회적 임팩트를 낼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진 직원들을 한데 모아 당시만 해도 아직 그 개념이 낯설었던 해커톤 스타일의 사내 워크샵을 진행한다. 사측에서 공간 및 행사 운영에 대한 지원을 담당하고 아이캔 팀원들이 내용과 진행을 준비한 왓더핵(What the Hack)이라는 이름의 이 워크샵은 반나절 만에 신청자가 마감되는 등 사내에서 큰 호응을 받았는데, 여기서 논의되고 개발된 아이디어는 다시 경영진에게 보고되었고, 선정 절차를 거친 뒤에 아이캔에 이어 아이라이더가 2호 과제로 공식 선정된다. 더불어 아이캔과 아이라이더 프로젝트의 시범적 운영을 거친 뒤 사측에서 2013년부터 창의개발연구센터를 전문적으로 전담하는 팀을 만든 것도 문화 및 제도적 환경의 마련보다 더욱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지원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조직 내외부에 대한 아이캔의 임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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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캔의 경우, 직원들의 호기심에서 시작한 작은 프로젝트가 이들의 열정으로 꾸준히 발전하는 가운데 조직의 현명한 개입을 통한 지원과 보상을 통해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었던 사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아이캔의 성공이 단순히 누구나 만들고 활용할 수 있는 디바이스의 개발 매뉴얼을 완성하고 공개했다는 데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해당 조직에 초점을 맞추어 본다면 아이캔은 아이라이더라는 2호 과제의 연결로, 또 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례의 탄생 가능성을 지원하는 전문 조직의 설립이라는 결과를 이루어냈다. 또 프로젝트 종료 이후 현업으로 다시 돌아간 팀원들은 프로젝트 경험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임팩트를 창출하는 창의적인 역량과 새로운 문제 해결의 시각을 업무에 더하고 또 주변의 동료와 나눔으로써 보다 많은 ‘임팩트 사내 기업가’의 씨앗을 심을 것이다. 

아이캔의 임팩트는 조직의 내부 테두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중증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아이캔 보급 사업을 통해 해당 제품의 수혜자에게 그 임팩트를 전달하고 있으며, 아이캔 팀은 프로젝트 종료 이후에도 디자인 다이브(Design Dive) 워크샵을 통해 아이캔 매뉴얼의 체계화 및 디자인 개선 작업을 진행하여 누구나 아이캔을 보다 쉽게 제작하고 보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 유타 주립 대학교의 한국 학생들은 현지 병원과 협력하여 아이캔을 활용한 의료 서비스 보급을 준비 중이며, 한국산업기술대학교의 한 학생은 안구 움직임을 읽어 전동 휠체어를 작동할 수 있는 안구 추적 휠체어 인터페이스(eye-tracking wheelchair interface)인 아이무브(eye-Move)를 졸업 작품으로 제작하는 등 아이캔의 사례가 널리 알려지면서 이를 접한 사람들에 의해 다시 새로운 임팩트가 지금도 꾸준히 탄생하고 있다. 

누구나 사회적기업가가 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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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가치와 임팩트를 창출하고자 하는 세대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대이다. 자아실현의 욕구를 가진 개인들은 어떻게 목표하는 바를 성취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품는 반면, 조직은 이들의 새로운 욕구를 어떻게 수용하고 조직의 역량 강화와 임팩트 창출에 활용할지에 대한 숙제를 갖게 되었다. 모두가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거나 NGO에 가서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기업의 구성원으로서 조직이 기대하는 직무를 수행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사회적 가치 실현이라는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돌파구를 점점 더 원하고 요구할 것이다. 따라서 조직과 개인은 사내 기업가정신을 새롭게 해석하고 활용하는 방법으로 양측의 니즈를 현명하게 해결하는 동시에 여러 적극적인 지원과 시도를 통해 창출된 임팩트와 사회적 가치를 보다 널리 퍼뜨릴 수 있다. 특히나 기업은 스케일과 자원의 가용 능력에 있어 또 조직의 다양한 레벨에서 혁신적 임팩트 창출 실험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큰 영향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사내 기업가정신은 조직의 내부 자원 활용을 통해 창의와 혁신을 탐구하는 노력이다. 더 스마트하고 멋진 임팩트 비즈니스는 안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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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출처: Flickr.com @cesarhar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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