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사진은 시대를 풍미한 천재 스티브 잡스의 일생을 다룬 영화 ‘JOBS’의 한 장면입니다. 대학을 자퇴한 잡스가 자신의 집 차고에서 워즈니악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개인용 컴퓨터를 만드는 장면인데요, 마침내 만들어진 컴퓨터를 가지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다름아닌 스탠포드 대학교였습니다. 언뜻 보면 자신의 작품을 가지고 처음으로 찾아간 곳이 자기 발로 걸어나온 ‘대학교’라는 사실은 자못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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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차고에서 컴퓨터를 만들고 있는 잡스, 영화 '잡스(JOBS)'의 한 장면 (출처 : http://www.allmovie.com/movie/jobs-v566519/review)

 

하지만, 오늘의 테마캐스트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해볼까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청년 잡스였다면 완성된 컴퓨터를 들고 찾아갈 수 있는 곳은 대학교 외에, 과연 어디가 있었을까요? 무한경쟁시대의 아이콘과도 같은 취업시장을 벗어나 벤처와 창업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는 젊은이들이 늘어가고,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장려도 점점 커져가는 오늘날의 한국사회이지만, 선뜻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한민국 청년의 80%가 고교 졸업 후 몸을 담게 되는 ‘대학교’라는 공간은 이러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도대체 어떠한 역할을 해야할까요?

이와 같은 질문들을 생각해보면서, 이번 테마캐스트에서는 세계를 주무르는 ‘애플(Apple)’ 사의 설립에서도 살짝 살펴볼 수 있었던 스탠포드 대학교와 실리콘 밸리의 관계를 중심으로, 현재 한국을 휩쓸고 있는 창업 열풍과 창업 장려 문화, 그리고 그 속에서의 고등교육기관의 역할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실리콘 밸리의 성공 뒤에는 스탠포드 대학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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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기업가정신의 중심지, 실리콘 밸리 (출처 : http://www.theatlantic.com/technology/archive/2012/06/what-happened-to-silicon-values/258905/)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다시 한번 짚어보자면 ‘실리콘 밸리(Silicon Valley)’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만 지역 남부 첨단기술 회사 밀집지역으로, 세계적인 기술혁신의 아이콘이자 1인당 특허수, 엔지니어 비율, 벤처 캐피탈 투자 등의 국면에서 미국 내 최고 수준을 유지하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산업단지의 대표적인 표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실리콘 밸리의 성공을 가능케 했던 요인에는 전세계에서 모여드는 유능한 엔지니어와 사업가들, 그리고 벤처 캐피탈 투자자 등도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꼽히는 것으로써 바로 스탠포드 대학교와 UC 버클리 등 등을 포함한 교육연구기관과의 적극적이고 긴밀한 협력관계라는 점이 바로 오늘의 테마캐스트가 주목하고자 하는 포인트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학점대체 인턴십 등의 형태로 몇몇 학교에서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산학협력’, 과연 실리콘 밸리와 스탠포드 대학교는 어떻게 실현하고 있을까요?

학교에 온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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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정신과 벤처 캐피탈(Entrepreneurship & Venture Capital)'에 대한 수업이 진행되는 스탠포드 대학교의 경영대학의 한 강의실. 열정적인 학생들 사이사이로 조금 고개가 갸웃해질만한 신사들이 눈에 띕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누구인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으며, 그와 동시에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이 보고 있었던 광경은, 바로 세계 최대의 검색포털 구글(Google)의 회장 에릭 슈미트(Eric Schmidt), 잡스의 롤모델로 지목된 바 있는 윌리엄 캠벨이 회장을 지낸 인튜잇(Intuit)의 공동창업자 스캇 쿡(Scott Cook), 실리콘 밸리의 저명한 PR 이사 레이몬드 나스(Raymond Nasr) 등 실리콘 밸리에서 내로라하는 각 기업의 주요 간부들이 한 두명도 아닌 열 명이 넘는 숫자로 대학 강의실을 채우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들은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학교를 방문하여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과 함께 토론하고 일하며, 강의가 끝난 뒤에는 학생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며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합니다.

여기까지라면, 기업 임원들이 한두 차례 시간을 내어 학교로 찾아가는 멘토링과 무엇이 다르냐고 혹자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스탠포드 대학교가 학생들을 위해 제공하는 이와 같은 시스템은 평범한 수업 참관, 혹은 멘토링으로부터 어떤 점에서 차별화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답은, 이 강의실에서 일어난 실제 사례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으로 대신해볼까 합니다.

강의실에서 스냅챗(Snapchat)이 탄생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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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 스피겔(Evan Spiegel)은 기계공학과 관련 상품 디자인(Product Design)을 전공하던 스탠포드 대학교의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친구가 “내가 지금 이 여자에게 보내는 사진들이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투덜대는 것을 들은 후 여기에 착안하여, 기본적으로 포토 메시징 기능을 수행하되 찍은 사진들이 공유된 후 10초 이후에는 사라지게 되는 스냅챗(Snapchat)이라는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게 됩니다.

“인터넷에는 삭제(Delete) 기능이 필요하다”고 했던 구글의 회장 에릭 슈미트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했듯이, 스냅챗은 여러가지 이유로(?) 공유한 사진들이 즉각적으로 사라지길 바라는 젊은이들의 욕구를 정확하게 겨냥한 덕에 빠른 시일 내에 4만 여명에 달하는 이용자를 확보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발빠른 확산으로 인해 스피겔은 공동개발자와 함께 스냅챗을 운영하기 위해 매달 2만 달러 이상씩을 컴퓨터 서버 비용으로 소모하게 되고 맙니다.

오래 가지 않아 마침내 신용 한도에 임박한 스피겔은 결국 돌파구를 찾기 위해, 앞서 언급하였던 ‘기업가정신과 벤처 캐피탈’을 강의하는 피터 웬델(Peter C. Wendell) 교수와 실리콘 밸리의 유명인사 나스에게 “투자자가 필요하지만, 벤처 캐피탈 회사에 가서 우리의 스냅챗에 대해 설명하기는 싫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기술을 빼앗고 스냅챗의 운영권을 빼앗아갈까봐 두렵다.”며 조언을 구합니다. 이에 웬델 교수와 나스는 트위터, 구글 벤처캐피탈 부서 등과의 접촉을 주선해주는 건 어떻겠느냐며 응답했고, 스피겔은 이들의 도움을 얻어 투자자본을 확보하여 스냅챗을 정식 출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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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스냅챗 어플리케이션의 사용화면 (출처 : http://www.smh.com.au/digital-life/consumer-security/security-flaw-found-in-app-used-for-safe-sexting-20130103-2c6i4.html)

 

이제는 어엿한 스냅챗의 대표가 된 스피겔은 자신의 창업에 대한 공을 스탠포드 대학교에서의 수업으로 돌리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웬델 교수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있어 엄청난 기회와도 같았다. 그 강의를 듣는 동안 나는 왼쪽에는 구글의 회장 에릭 슈미트, 오른쪽에는 유튜브의 공동창업자 채드 헐리(Chad Hurley)를 두고 앉을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스캇 쿡(Scott Cook)과 같은 훌륭한 멘토와도 만날 수 있었다.”

학문 연구의 전당 vs. 산업 발전의 준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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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일화와 같은 방법 외에도, 스탠포드 대학교는 다양한 방법으로 실리콘 밸리와의 협력에 적극 임하며 캠퍼스 내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도전정신과 실험정신을 마음껏 발산하고, 그것이 적합한 자본과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주선하고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혁신의 선두주자로 달리고 있습니다. 스탠포드가 실리콘 밸리의 발전을 일구는 빼놓을 수 없는 주역이라는 증거는 스탠포드의 전자공학과와 컴퓨터공학과의 별명 '더블 E(Engineering)'에서도 알 수 있는데, 이는 이 두 학과가 실리콘 밸리를 움직이는 두 개의 엔진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실제로 스탠포드 졸업생 중 상당수가 실리콘 밸리에서 취업을 하고, 그 중에서도 상당수가 5년 안에 자신의 회사를 창업할 정도이니, 스탠포드대가 실리콘 밸리를 '스탠포드의 제 2의 캠퍼스'라 부르는 것도 가히 무리가 아니겠지요. (출처 : 동아사이언스 멘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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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학생 창업을 위한 세계 최고의 지원정책으로 잘 알려진 릴런드 스탠포드 주니어 대학교(Leland Stanford Junior University)의 캠퍼스 (출처 : http://scpd.stanford.edu/design/)

 

물론, 한편으로는 “신성한 학문의 상아탑이 되어야 할 대학이 산업 전선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라는 반문과 함께 다소간의 거부감을 느낄 분도 계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대학은 전문적인 교육과 연구 기능을 수행하는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인류의 문명을 세대에서 세대로 계승해가는 ‘교육’을 담당하는,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공간입니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교육이라는 것이, 학생으로 하여금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모든 것을 배우게 하는 것일까요? 하버드의 교수였던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는 “오로지 학교에서만 교육을 받은 사람은 ‘교육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했으며, 예일대 교수와 시카고대 총장을 지낸 교육 철학자 로버트 허친스(Robert M. Hutchins)는 “교육의 목적은 다름이 아니라 젊은이들로 하여금 일생에 걸쳐 자기 스스로를 교육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육과 연구가 진정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신성한 학문의 전당 안에서만 머물기보다 그것이 탐구하고자 하는 대상인 세상만큼이나 넓은 폭과 깊이로 자신의 활동 범위를 넓혀 세상과 맞닥뜨려야 하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러한 치열한 연구와 심도 있는 지식이 기반이 되어줄 때, 보다 더 건강하고 견고한 창업 장려 문화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그들의 시작을 응원하는 우리들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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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둘러보면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을 종종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된 요즘, 그들을 위한 지원기관 역시 창업자들만큼이나 각양각색으로 도처에 산재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기반이 될만한 연구나 깊이 있는 지식도 없이 무작정 “당신의 꿈을 믿고 창업에 도전하세요!” 라고 겉핥기 식의 창업만을 내몰고 있는 오늘날의 창업 장려 문화가, 과연 진정으로 창업을 장려하고 있는 것일까요?

흙 한번 제대로 고르지 않은 작은 스티로폼 박스 화단에 꽃을 피우라고 무작정 씨를 한가득 뿌려놓고서 우후죽순처럼 올라오는 싹들을 보며 더 많은 꽃이 피리라 기대하는 것을 보고, 진정 개화를 응원하는 농부의 마음이라 일컫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더 많은 싹만 틔우면 된답시고 일단 씨부터 마구 뿌릴 것이 아니라, 먼저 건강한 싹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인지를 점검하고, 틔워진 싹들이 꽃을 피울 때까지 제대로 잘 자랄 수 있도록 돌보고 가꾸는 것이야말로 진정 꽃이 피길 격려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물론 대학이 청년들에게 생계를 이어가는 법(how to make a living)을 가르치느라 인생을 만들어가는 법(how to make a life)을 가르치지 못하게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학도, 사회도, 청년도,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창업 문화의 ‘시작’을 위해 함께 노력해가면서, 더 나은 세상을 ‘시작’하는 동력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대학은 청년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지식을, 청년은 사회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희망을, 사회는 대학에게 더 나은 세상이라는 또 다른 탐구의 대상을 주는, 그러한 선순환 속에서 누구나 새로운 ‘시작’을 꿈꾸고 즐거운 인생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오늘도 여기저기서 움트고 있을 ‘또 하나의 시작’들을 응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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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의 가치는 그가 세상으로부터 무엇을 받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가 세상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 Albert Ei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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