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때는 좀 놀던 남자가 있다. 뉴욕 맨해튼의 화려한 밤생활을 한껏 즐기며 비싼 몸값을 자랑하던 나이트클럽 매니저에서 이제는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과 희망을 선물하기 위해 우물을 파는 사람.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처럼 굴곡 많은 삶과 이야기를 품고 있는 리더. 혹은 Jay-Z의 랩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타락한 착한 소녀(good girl gone bad)”와는 정반대의 길을 돌아온 남자. 월드스타 싸이의 노래를 살짝 빌려 “깨끗한 물 한잔의 의미를 아는 품격 있는 남자”로 설명해봄직한 이 사람. 재미나고 굴곡진 인생 이야기를 품고 있기에 더 멋진 리더인 채리티 워터(charity: water)의 설립자이자 CEO인 스캇 해리슨(Scott Harrison)이다.

Scene #1. 1979년, 미국 뉴저지의 어느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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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필라델피아에서 출생한 스캇 해리슨은 전기엔지니어인 아버지와 저널리스트 어머니를 둔 보통의 미국 중산층 소년이었다. 평범하던 소년의 일상은 그가 4살이던 해에 큰 전환을 맞게 된다. 당시 스캇의 가족이 뉴저지로 이사했는데, 입주한 새 집의 난로 연소 장치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직장으로, 어린 아들은 놀이터로 보낸 스캇의 어머니는 금이 간 난로의 파이프를 혼자 고치려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쓰러지고 마는데, 이로 인해 면역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져 급도로 건강이 쇠약해지게 되었다. 이 일로 뱃속의 아이까지 잃은 스캇의 어머니는 모든 화학 물질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게 되었는데, 이는 향수를 못 뿌리는 것은 물론 인쇄물의 잉크조차도 심각한 병을 유발할 정도였다. 어린 스캇은 어머니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오븐에 책을 구워 화학물질을 제거하고, 면장갑과 특수 마스크를 씌워드리는 등 형제 없이 어머니의 병간호와 집안일을 맡아 자랐다.

특이한 점은 스캇의 가족들이 가스 회사를 고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캇의 부모님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로 열심히 교회를 다니며 기도하는 방법으로 가족을 지켜나가는 길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렇게 아픈 어머니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가정환경은 사춘기를 통과하는 스캇에게 때때로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했다. 일례로 스캇의 부모님은 스캇을 바르고 얌전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 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스캇을 보내기도 했는데, 그곳은 달랑 8명의 학생에 교회 지하에 마련된 부실한 수업 환경이 전부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9학년을 다닌 스캇은 부모님께 보통 고등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한참을 조른 끝에 결국 전학에 성공한다.

보통 학교로 다시 돌아오는데 성공한 스캇은 그간 부모님의 반대로 인해 할 수 없던 모든 행동들을 시작한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전환은 아마도 머리를 기르고 친구들과 시작한 밴드가 점차 유명세를 얻어갔던 점일 것이다. 선데이 리버라는 이름의 이 밴드는 뉴욕까지 진출하게 되는데, 당시 18살의 스캇은 뉴욕으로 건너가 클럽 공연을 시작하며 파티와 술이 가득한 밤문화를 처음 접한다.

Scene #2. 1998년, 뉴욕 맨하탄의 나이트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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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으로서 스캇의 인생은 뉴욕 진출 6개월 만에 밴드가 해체되며 끝을 맞게 된다. 하지만 이 짧은 기간의 밴드 활동을 통해 스캇은 실제 뮤지션들보다 클럽 매니저들이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을 목격하면서 클럽을 중심으로 한 파티와 이벤트 비즈니스에 눈을 뜨게 된다. 뉴욕대학교에 입학한 스캇은 낮에는 졸업을 할 정도로만 학교를 다니면서 밴드 활동 당시 알게 된 클럽의 매니저 및 프로모터들의 활동을 도우며 나이트 라이프를 채워갔다.

일주일에 사나흘 정도 일하면서 쉽게 여자를 만나고 술도 마시며 돈도 벌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된 스캇은 1998년 대학 졸업 후 본격적으로 클럽 비지니스에 뛰어든다. 24살, 당시의 스캇은 스티비 원더, 휘트니 휴스턴 등의 거물급 가수들이 와서 공연하던 일류 클럽의 매니저를 돕고 있었다. 이때 옆에 새 클럽이 문을 열고 이 곳이 곧 인기를 얻자 스캇은 일주일에 100달러만 줘도 좋으니 일하고 싶다며 클럽 주인을 막무가내로 찾아간다. 사람들이 가장 적게 오는 월요일 저녁을 담당하는 프로모터로 채용된 스캇은 이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1년 만에 1주일에 몇 천 달러씩 받으며 일하는 잘나가는 매니저로 곧 자리를 잡는다. 이후 그는 최상급 이벤트 및 클럽 컨설팅 사업을 펼치며 화려한 성공가도를 달리는데, 당시의 모습에 대해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모든 걸 다 가지고 있었어요. 롤렉스 시계, 그랜드 피아노가 있는 멋진 아파트, 리스한 BMW, 래브라도 리트리버, 거리의 간판과 잡지에 사진이 실리는 여자친구까지.” 

이런 생활을 누리던 스캇은 28살의 겨울, 친구들과 새해맞이 여행을 떠난다. 수 천 달러를 쏟아 불꽃놀이를 하고, 바카라에 만 달러씩 걸며 여느 때와 다름없는 사치스러운 파티를 한창 벌이던 중, 그는 갑자기 계시와도 같은 순간을 경험한다. “갑자기 나는 지난 10년 동안 느린 자기 파괴의 과정을 거치며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는지 또렷하게 마주할 수 있었어요. 나는 감정적으로,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파산 상태였죠. 눈앞의 베일이 걷힌 기분이었어요” 이렇게 10년간 자신이 무분별히 좇았던 화려한 라이프 스타일이 갑자기 덧없어지며 스캇은 그 과정에서 자신이라는 인간의 가치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느꼈다. “아무리 해도 여자와 돈, 사회적 지위 같은 것들은 결코 충분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면 다들 이런 식이었어요. 형편없이 이혼당하고 아이들도 만나지 못하는 쉰 살의 남자가 열아홉 살짜리 모델을 쫓아다니고 있는 거에요. 그것도 세 달이면 끝날 관계를. 나는 사회에 오염을 일으키는 사람(poll-uter)이었어요. 온갖 종류의 마약과 술에 찌들어 있었고, 인생은 그저 지루하기만 했죠.”

여행에서 돌아온 스캇은 어린 시절에 자신과 부모님에게 기둥이 되어줬던 믿음과 참된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는 그간의 생활과 정반대의 일이 무엇일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데 그 답이 있을 거라는 결론을 얻는다. 지난 10년을 뒤로하고, 이 중 1/10인 1년이라도 온전히 봉사하는 삶을 살아보고자 결심한 것이다. 그는 사업을 접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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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환한 미소까지 아름다운 그, 스캇 해리슨

 

Scene #3. 2004년, 서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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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구호 활동을 벌이는 조직들을 대상으로 봉사 활동 기회를 알아보기 시작한 스캇 해리슨은 몇 달 동안 거절만 당할 뿐 어떤 곳에서도 부름 받지 못한다. 생각해 보면 나이트클럽 및 파티 전문가와 구호 활동 사이에 공통점을 찾기란 꽤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유럽의 친구 집에서 머물고 있던 스캇은 그를 거절하지 않은 유일한 조직, 바로 머시 십(Mercy Ship)이라는 의료 봉사 단체로부터 기회를 받는다. 스캇이 매달 5백 달러를 지불하면 그를 아프리카에 데리고 가주겠다는 조건으로 말이다. 머시 십은 이렇게 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로부터 돈을 받아 운영비를 마련하는 단체였다. 찬 밥 더운 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 스캇은 그 길로 독일에 정박하고 있던 머시 십의 의료 선박으로 가서, 조직의 모든 활동을 카메라로 기록하는 사진 기사 일을 수락한다. 

머시 십은 1978년부터 활동한 국제 자선/봉사 단체로서 세계에서 가장 큰 의료 선박을 운영하고 있다. 선박에 의사와 자원 봉사자들을 태우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가서, 항구에 정박하면서 무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와 더불어 지역 개발 프로젝트, 지역 보건 프로그램, 농업 교육 등의 활동을 펼치는 것을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이들은 전 세계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하지만, 특히 서아프리카 지역을 중점적으로 돕고 있으며, 스캇은 이 배에 몸을 싣고 아프리카로 향한다.

머시 십에 합류한 스캇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크나큰 충격과 그간 알지 못했던 세상의 어두운 면을 맞닥뜨리게 된다. 머시 십은 여러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그중에서도 얼굴의 종양이나 백내장을 제거하는 수술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에 단체는 정박한 항구 인근의 스타디움을 빌려 500명의 수술 자리를 마련했다. 그런데 진료를 시작한 첫날 새벽 여섯 시에 이미 7천 명의 사람들이 몰린 것이다. 그리고 스캇은 수술대 옆에 서서 모든 환자들의 얼굴과 수술 과정, 그리고 그들의 치료 경과를 촬영해야 했는데, 얼굴의 반을 뒤덮는 엄청난 크기의 종양을 가지고 수술실로 들어온 14살 소년을 첫 환자로 받자마자 밖으로 뛰쳐나가 눈물을 터뜨렸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뭐 이까짓 거 가지고”라는 태도로 다시 돌아와 사진을 찍으라고 했고, 한참을 정신없이 울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스캇은 소년의 얼굴에 렌즈를 들이댈 수 있었다고 한다.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간단한 수술과 기초적인 의료 치료를 받지 못해 앞을 보지 못하고 기형적인 외모로 생활의 불편함은 물론 자존감까지 상실한 수천 명의 환자들, 심지어 이들 중 어떤 이들은 무료 수술을 받기 위해 한 달을 걸어온 사람들도 있었다. 이러한 현실을 하루도 빠짐없이 매 순간 기록으로 남기며 스캇은 공허한 삶이 서서히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특히 수술과 회복을 마친 환자를 돌보고, 이들이 다시 마을에 돌아가 모두의 축하를 받고 새 삶을 시작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그가 일찍이 누려보지 못한 보람을 선사했다. 그리고 이 기간 중 스캇은 놀랍게도 그간 아팠던 어머니가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다는 기적 같은 소식을 전해듣는다.

9개월 동안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삶을 살며 스캇은 어머니의 쾌유라는 기적과 내적 평화를 함께 선물받았다. 이후 배가 점검을 받기 위해 철수하자 스캇은 바로 뉴욕으로 돌아가 다음번 활동을 기다리는 기간 동안 맨하탄 첼시 지역의 갤러리를 빌려 자신이 찍은 사진을 전시했다. 치료를 받기 전과 이후의 주민들의 얼굴, 그리고 이들의 달라진 생활을 생생히 잡은 스캇의 사진들을 통해 총 10만 달러 정도의 후원금 모집에 성공한다. 이 돈을 고스란히 머시 십에 기부한 스캇은 다시 머시 십에 합류, 그의 두 번째 미션을 위해 라이베리아로 간다.

14년 간의 내전을 막 끝낸 라이베리아는 전기, 상·하수 시설, 물과 같이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프라가 전무한 나라로, 나라 안에 의사가 달랑 두 명이었고, 그나마 제대로 된 수술실도 없는 말 그대로 처참한 상황이었다. 당시 배에는 스캇처럼 의사가 아닌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친구가 있었는데, 스캇은 엔지니어로서 마을 우물을 파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던 이 친구를 따라 어느 날 한 마을을 방문했고 이 친구는 그에게 마을 사람들이 물을 마시던 웅덩이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스캇의 표현에 따르면 “내 개조차 절대로 근처에도 못 가게 할” 엄청나게 더럽고 벌레가 우글거리는 물을, 마을 주민들은 천을 필터처럼 써서 쓰레기만 걸러내 마시고 있었다.

이날 이후 스캇은 인간의 생존에 가장 기본적이면서 제일 큰 중요성을 갖는 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는 의사들에게 오염된 물과 질병의 관계를 물어보며 적극적으로 공부한 결과 아프리카와 같은 저개발 지역의 주민들이 겪는 질병의 80%가 물과 위생 문제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의료적인 치료는 분명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하고 고귀한 일이지만 그 비용이 비싸고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요구하며 치료의 수혜자에 그 대부분이 집중된 제한적 임팩트를 낳는 반면, 우물은 훨씬 적은 돈으로, 더 쉽게 수십, 수백 명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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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깨끗한 물 한잔의 의미를 깨닫다 (출처 : 채리티 워터 핀터레스트)

 

Scene #4. 2006년, 다시 맨하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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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이제 서른 살이 된 스캇은 약 2년간의 아프리카 생활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온다. 담배, 마약, 도박을 완전히 끊은 그의 인생은 완전히 변화했고, 스캇은 새로운 결심을 한다. 죽기 전까지 지구 상의 모든 사람들이 깨끗한 물에 대한 접근권을 갖고, 그들의 건강에 긍정적인 임팩트를 끼칠 수 있도록 일하자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자선 단체를 만드는 걸로 이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결심이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단체가 바로 채리티 워터다.

하지만 채리티 워터의 시작은 당연히 순탄치 않았다. 스캇은 함께 머시 십에 봉사를 갔던 친구를 직원으로 두고, 월급을 주기는커녕 당장 친구 집 소파에서 생활하며 조직을 이끌었다. 그가 채리티 워터의 활동으로 처음 기획한 이벤트는 바로 자신의 생일 파티였는데, 예전에 함께 나이트클럽을 운영하고 어울리던 친구들을 찾아가 장소를 빌리고 700명의 친구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20달러의 파티 입장료를 받고, 오픈 바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파티 후에 총 만 오천 달러를 모으는 데 성공한 스캇은 다시 우간다로 날아가 그의 첫 프로젝트로 세 개의 우물을 짓고, 세 개의 우물을 보수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그는 파티에 참석한 친구들에게 활동을 담은 사진을 다 보내 감사를 표현한다.

이렇게 조금씩 활동을 시작한 스캇은 웹사이트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당시 두 번째 직원으로 디자이너를 채용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던 그는, 뉴욕 시내에서 더러운 물을 전시하고 시민들의 인식을 제고하는 활동을 기획했는데, 이때 손꼽히는 광고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디자이너를 자원 봉사자로 만나게 된다. 겸손하면서도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이 디자이너는 직장을 다니면서 퇴근 후에 재능 기부로 웹사이트를 예쁘게 만들어줬고, 결국에는 채리티 워터에 합류하기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다. (재밌는 사실을 덧붙이자면, 이후 이 디자이너는 자비를 들여 라이베리아에 직접 건너가 현지의 실상을 목격하며 깨끗한 물의 중요성을 깨닫지만 그만 말라리아에 걸려서 돌아오고 만다. 4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병원비를 지불해야 하게 된 이들은 결국 디자이너가 다니던 예전 회사에 전화를 거는데, 채리티 워터의 활동과 의미를 지지한 그녀의 옛날 고용주가 흔쾌히 병원비를 대신 내주었다! 더 재밌는 사실은? 스캇 해리슨과 디자이너, 이 둘은 2009년에 결혼해서 함께 행복하게 채리티 워터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채리티 워터의 설립 배경, 그리고 스캇의 생일 파티와 디자이너 채용은 채리티 워터의 빠른 성공에 기여한 중요한 특징들을 담고 있는 내용이다. 첫째, 스캇이 밝힌 “신뢰할 수 있는 조직”이라는 설립 배경은 채리티 워터의 100% 모델의 근거가 된다. 100% 모델이란, 기부자들의 후원금100%를 고스란히 우물 파는 활동에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기부자들이, 특히 젊은 세대가 자선에 대해 시니컬하고 신뢰도가 낮음을 알게 된 스캇은 조직 활동의 투명성을 최대화하기 위해 은행 계좌를 아예 두 개로 만들었다. 이 두 계좌 간에서는 서로 거래하지 않는데, 한 계좌에는 채리티 워터의 깨끗한 식수 공급 활동과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기부금을, 나머지 계좌에는 채리티 워터 조직 자체의 운영비, 즉 인건비와 기타 제반 시설 비용 등을 지원하는 후원금을 받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기부금을 보낼 때 들어가는 신용카드 수수료까지 채리티 워터가 후원한다는 점이다. 기부금을 수령할 때 신용카드 등 각종 거래 수수료를 제하면 원래 기부자가 의도한 금액에서 일부 모자란 부분이 발생하게 되는데, 채리티 워터는 스스로 펀드 레이징하여 이 사라진 부분을 메꿔준다. 이렇게 기부자들의 돈을 모아 우물을 파거나 식수 공급 시설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면, 기부자들은 자신이 기부한 돈이 어느 지역에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구글 맵을 통해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사진과 동영상이 함께 제공됨은 물론이다. 

또한, 스캇의 생일 파티로부터 시작된 펀드 레이징은 채리티 워터의 가장 중요한 사업 중 하나인 생일 기부하기(Pledge Your Birthday) 프로그램의 구상으로 연결되었다.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큰 액수의 기부금 조성에 성공하자, 스캇은 그다음 해에 실제 파티를 여는 대신, 택시비와 술 값, 파티 입장료만큼의 액수를 기부해달라고 친구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이렇게 스캇은 5만 9천 달러를 모았고, 이렇게 생일 기부하기의 아이디어는 점점 구체화 되어 채리티 워터의 대표 서비스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생일을 맞은 사람이 스스로 페이지를 개설하거나 혹은 친구들이 생일 파티를 열어주듯 페이지를 열고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생일 선물 대신 그 사람의 이름으로 기부금을 모집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채리티 워터의 많은 기부자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을 지속적으로 채리티 워터의 기부자로 새롭게 끌어들이고 있으며, 이는 채리티 워터가 빠르게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한편 스캇은 채리티 워터의 설립 초기에 당시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액수의 연봉을 제시하며 디자이너를 채용했는데, 이는 10년 동안 이벤트 비즈니스를 겪으며 그가 몸소 체험한 브랜딩의 중요성에서 나온 판단이었다. 스캇은 이렇게 말한다. “깨끗한 물과 같이 세계적으로 큰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만큼 글로벌한, 예를 들면 나이키와 애플, 코카콜라 만큼의 신뢰와 파워를 갖춘 브랜드가 필요하다.” 또한, 그는 좋은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 반드시 몸값 높은 사람을 채용한다고 해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재능있는 사람을 한두 명 뽑고 이들의 작업과 결과물을 가려내는 안목과 기준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채리티 워터는 이렇게 기부자들에게 최대한의 투명성과 신뢰를 제공하는 100% 모델, 기부자 네트워크가 계속 확장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서비스의 제공, 그리고 좋은 브랜드를 기반으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할 수 없는 일은 파트너십을 통해 해결한다. 다시 말해, 물이 필요한 지역에서 실제 우물을 파고, 시설을 지어주는 활동은 현지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신뢰할 수 있는 NGO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이루어지며, 채리티 워터는 기부자들의 기부금을 모아 이들 NGO의 전문 역량과 활동을 지원하고 그 결과물을 기부자들에게 실시간으로 피드백 해주는 것이다. 이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기부금 조성과 물 문제에 대한 대중의 인식 제고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채리티 워터의 활동으로는 매년 열리는 채리티 볼(charity: ball)이라는 파티가 있다. 여러 기업의 후원을 받아 진행되는 이 행사는 유명 인사와 연예인들까지 참여하는 큰 행사로, 워터 워크(water walk)라는 패션쇼 같은 이벤트 시간에는 참석자들이 채리티 워터의 브랜드인 노란 물통을 들고 런웨이를 걷고, 참석자들과 후원 조직들이 내놓는 물품 경매를 진행한다. 2012년 12월에 열렸던 채리티 볼은 하룻밤 만에 3백만 달러의 기부금 모으는 대성공을 기록했으며, 채리티 워터는 이를 통해 8만 명의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마시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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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채리티 볼 행사 사진

 

Scene #5. 2020년, 깨끗한 물을 필요로 하는 모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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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리티 워터는 현재까지 20개 국가에서 22개 파트너 조직과 8,157건의 프로젝트를 진행, 약 320만 명의 사람들에게 깨끗한 물을 전달했으며, 2020년까지 자신들의 활동을 통해 1억 명이 더 나은 삶을 누리길 꿈꾼다. 채리티 워터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또 빠르게 성장했지만 스캇은 첫 우물을 뚫었던 때를 결코 잊지 못한다고 한다. 우물을 통해 깨끗한 물을 얻게 된 사람들의 얼굴에 피어난 기쁨, 그리고 그 순간 그가 느낀 대체 불가능한 행복은 죽기 전까지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깨끗한 물을 전달하고 싶다는 그의 목표를 이루어 가는 데 있어 결코 소진되지 않을 동력이다. 먼 곳을 돌고 돌아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고, 그 누구보다도 정직하고 멋지게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젊은 리더, 스캇 해리슨. 채리티 워터의 웹사이트에는 그가 채리티 워터를 처음 설립하면서 쓴 글이 있다. 이 글을 빌려 스캇의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자.

“사전은 자선(charity)을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나누어주는 행위로 정의합니다.  은 ‘caritas’라는 단어, 즉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죠. 골로새서 3장에 보면, 이런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사랑을 걸쳐라, 이는 온전함의 띠니라(put on charity, which is the bond of perfectness)’라구요. 비록 이 구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는 이 말이 참 좋습니다. 

‘사랑을 입는다(to wear charity)’라는 표현이요.” 

IBR 편집팀은 지난 호의 기고자였던 베스 캔터(Beth Kanter)의 소개로 스캇 해리슨과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스캇은 당시 출장으로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 직접 답을 보내주었다. 필자의 질문에 대한 스캇의 친절하고 열정적인 답변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1. 기존의 NGO들과 비교할 때 채리티 워터가 특별한 점은 여럿 있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혁신적인 요소는 100% 모델이다. 이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렸으며 이를 통해 목표했던 바는 무엇이었는지?

채리티 워터의 설립 전,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결과 나는 이들이 자선과 기부에 대해 크게 실망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반복되는 몇 가지 문제 때문이었는데, 첫째, 사람들은 그들이 내는 돈이 실제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둘째, 이들은 자신들의 기부가 창출하는 임팩트와 괴리되어 있었다. 일반적인 비영리 조직은 기부자들에게 감사 편지를 보내고 다시 기부금을 요청한다. 나는 이 두 문제를 전부 해결하고 싶었다. 따라서 조직 운영비 지출에 기부금이 쓰이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부자들만을 위한 은행 계좌를 마련함으로써 나는 다른 계좌의 기부금 100%가 우물 짓는데 직접 쓰이게 했다. 나는 처음부터 절대로 공적 기부금을 조직 운영을 위해 쓰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이 공공 계좌에 입금되는 기부금의 신용카드 수수료까지 우리가 메꿔줌으로써 기부금의 온전한 100%가 쓰이도록 하였다. 예를 들면, 기부자가 1,000달러를 기부했을 때 우리는 3%의 수수료를 제하고 970달러만 받는다. 우리는 이 손실된 30달러에 대한 펀드 레이징을 따로 마련하여 원래 기부자가 보내고자 했든 1,000달러를 현장에 전달한다. 이러한 방법은 그 성과를 추적하는 것도 쉽다는 점에서 두 번째 문제 또한 해결해주었다. 100% 모델을 통해 우리는 “증명 가능한 약속”을 할 수 있었고 웹사이트의 사진과 GPS 안내를 통해 우리가 벌이는 모든 프로젝트의 성과를 보여줄 수 있다.
2. 기부자들에게 조직운영에 대한 후원의 필요성을 어떻게 설득하는가? 당신의 전략은 무엇이며 기부자들에게 어떤 “리턴(return)”을 돌려주는가? 

이는 사실 당신의 조직이 100% 모델을 통해 실제 조직의 미션이 실현하고 성장하는 것이 증명될 때는 간단한 일이다. 기부자들 중엔 조직 성장을 돕고자 하는 “빌더(builder)”가 있기 마련이다. 이들은 자선에 대해 진정한 열정과 신뢰를 갖고 당신의 미션을 지지한다.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딴 우물이 필요하지 않으며, 전화비, 출장비, 혹은 사무실 임대료를 지원하는 데에도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내 아내와 나 또한 우물 외에 여러 분야에 기부를 하고 있는데 우리 또한 다른 사람들이라면 기부하고 싶지 않은 내역들에 우리의 돈이 쓰이도록 하고 싶다. 나는 내가 후원하는 사람들이 선한 봉사자들임을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나의 돈이 이들의 출장비에 쓰여 이들이 집에 돌아가 그들의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를 바란다. 채리티 워터의 경우 우리는 조직 후원금이 얼마나 가치를 갖는지 내부적으로 레버리지 효과를 따져보는데, 앞으로 우리가 더욱 커진다면 운영비에 쓰이는 1달러 대비 10배까지의 가치를 가질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는 두 은행 계좌에 각각 100달러씩을 갖고 두 가지 예산을 함께 운영해야 하는 설립 초기에는 정말 힘들고 리스크가 큰 일이었다. 사실 이 모델을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 모델은 우리의 경우에, 그리고 우리가 해결코자 했던 방식에 대해서는 잘 작동해왔다.
3. 채리티 워터는 펀드레이징과 인식 제고 활동에만 집중하고, 실제 활동은 현지의 NGO들과의 파트너십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어떻게 파트너들을 선정하고 이들을 지원하는가?

채리티 워터를 시작할 때, 나는 많은 곳을 직접 여행했다. 이때 나는 지역 커뮤니티를 이끌고, 좋은 수자원, 위생 및 청결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데는 훌륭하지만, 자신들의 스토리텔링과 펀드레이징에는 서투른 좋은 NGO들을 만났다. 나는 우리가 이 두 가지 역량 모두를 발전시킬 수 없었다고 생각했고, 또 스스로가 물 전문가나 현장 경험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현지 파트너들에게 필요한 역량인 기부금 조성과 대중들의 인식 제고에 대신 집중하기로 했다. 물과 관련된 비영리 섹터는 그렇게 크지 않아 우리는 주로 추천을 통해 파트너를 찾고, 또 프로그램 팀이 항상 현장에서 조사하고 모니터링하며 파트너들과 프로그램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마을과 솔루션 선정(우물, 샘, 필터)은 현지 파트너들에게 맡기지만, 이들이 트럭이나 드릴 같은 설비를 마련할 때 기금 조성을 돕기도 한다.
4. 채리티 워터의 웹사이트만 보더라도 당신이 통일된 브랜딩과 스토리텔링을 구축하고 유지하는데 큰 노력을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브랜딩이 특히 NGO들에게 더 중요한 이유는?

우리 채리티 워터에는 늘 “사람들은 선하다, 하지만 이들은 게으르다”라고 말하는 디렉터가 있다. 우리가 사는 곳은 우리에게 현상을 주시하고, 뭔가를 공유하고 구매하기를 요청하는 사람들과 코즈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이런 가운데 브랜드를 구축하는 것은 당신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이다. 많은 웹사이트들은 보기만 해도 안타까운 수준이며, 좋은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은 웹디자이너를 고용하는 것만큼 쉽지 않다. 나는 훌륭한 안목을 갖추고 좋은 브랜딩이 어떤 것인지 잘 아는 능력 있는 사람이 조직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의 경우 내 아내 빅토리아가 재능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고 있지만 나 또한 나의 취향을 정확히 알고 있다. 결국에는 좋은 안목이 중요하다. 조직에 훌륭한 브랜드가 무엇인지 잘 알고 이에 대해 비전을 갖춘 사람을 두고 반드시 힘과 예산을 적극 지원하라.
5. 브랜딩 전략을 추구하는 다른 조직들에게 건네고자 하는 충고가 있다면 무엇인가? 이들이 집중해야 할 점과 조심해야 할 부분은?

어느 채팅 서비스의 설립자가 했던 강연이 생각난다. 그가 말하길, 그 회사의 채팅창에 연결된 모든 링크들을 다 살펴본 결과, 이용자들이 가장 많고, 또 (여러 번 공유해서 원래 링크로 부터)가장 멀리 갔던 콘텐츠는 역시 비디오였다. 두 번째는 사진이었고, 세 번째가 읽어야 하는 링크들이었다. 이는 시각적 이미지가 중심인 시대인 오늘날에는 비디오와 사진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해야 함을 의미한다. 바인(Vine, 편집자 주: 동영상 공유 어플로 트위터 메시지와 6초의 동영상을 결합한다)을 예로 들어보자. 당신 조직의 활동을 바인에 담아 설명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은 성장의 큰 동력이자 브랜드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나의 마지막 조언은 비영리 조직에게 큰 마케팅 예산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커다란 광고판이나 슈퍼볼 광고를 위한 돈을 지불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좋은 콘텐츠를 만든다면, 그리고 잡지나 방송국, 심지어 온라인 광고 회사의 무료 또는 여분의 공간을 따낼 수 있다면 기회는 충분하다.
6. 채리티 워터의 의미있는 활동에 참여하고픈 사람들로부터 많은 이력서를 받고 있을 것 같다. 채리티 워터는 직원을 어떻게 채용하는가? 지원자의 어떤 자질을 보는가? 

작년에 우리는 보다 의도와 목적을 갖춘 조직 문화를 만들려는 시도로서 채리티 워터에서 중요시 여기는 것들을 함께 종이에 써내려 갔다. 이 내용은 “-이즘”과 같은 사조부터 다양한 내용을 포함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우리는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또는 “우리는 소프트웨어나 음악을 불법으로 주고받지 않는다.” 같은 것도 있었다. 우리는 지원자 입장에선 꽤 많은 숙제를 해야하는 집중적인 스크리닝 절차를 갖고 있으며 여러 디렉터들이 모든 최종 지원자를 직접 인터뷰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지원자들이 기존에 성취한 일들 중에 이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멋진 것을 찾고, 겸손과 일관성 그리고 관용과 같은 태도를 갖추고 있는지 살핀다. 늘 우리의 선택이 맞았던 것은 아니지만 현재 우리는 채리티 워터를 매일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능력과 성격에 매우 만족한다.
7. 최근 “1% or Nothing”이라는 흥미로운 이니셔티브에 참여했다. 이를 통해 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 

실리콘 밸리의 많은 기술 기업가들의 지원 없이는 이 이니셔티브가 설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지분은 많지만 현금은 쪼들린다. 그러나 이들은 채리티 워터에 자신들의 조직 지분 1%를 기부하고 싶어했다. 이는 이들로 하여금 (사업이 성공하여) 회사를 매각하거나 주식 공개를 하는 기회가 오기 전에 미리 기부에 참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8. 10년 후에 무슨 활동을 하고 있을까? 그때까지 달성하고 싶은 것은? 

나는 그때까지도 채리티 워터에 남아있고 싶지만, 10년 후 에도 내가 조직의 CEO로 적합한 사람일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CEO라는 직함 대신 워터보이나 다른 이름의 타이틀을 하나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지 않을까. 어찌됐든 나는 우리의 활동을 사랑하고 미션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때까지 우리 앞에 놓인 ‘1억 명에게 깨끗한 식수 공급’이라는 큰 목표를 이루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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