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s type=”horizontal”] [tabs_head] [tab_title]기고자 프로필[/tab_title] [/tabs_head] [tab]

김윤정

리치 이니셔티브, garukim@gmail.com

김윤정 대표는 서울대학교에서 역사교육, 통합사회학사 학위를, 런던대학교 교육연구대학원에서 교육경제개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다년간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 세이브더칠드런을 통해 국제개발 협력 현장에서 활동했으며, 현재는 NGO가 아닌 리치 이니셔티브(REACH Initiative)라는 국제개발 협력 운동(Movement)의 공동설립자이자 대표로서, 일상성에 기초한 소통 및 협력을 바탕으로 국내와 네팔의 마을과 주민들을 잇는 마을살리기 프로젝트를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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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위의 공식이 각각 “자유낙하 공식, 가속도의 공식, 원주율의 공식”이라는 것을 보자마자 기억해내었다면 당신은 교과서를 중심으로 대입을 준비하고 대학에 수석 입학한 ‘왕년의 전교 1등’이거나, 원리도 모른 채 달달 외워가며 준비했던 수능/학력고사의 트라우마가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경우일 가능성이 높다. 당신이 어디에 속하든지와 상관없이 중요한 사실은 이 공식에 수치를 넣으면 ‘정답’이 나올 확률이 100%라는 점이다. 조건들이 통제된 상황에서 수차례의 실험과 슈퍼컴퓨터 등을 이용한 계산을 거쳐 검증된 공식들이기 때문이다.

국제개발에는 이런 공식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해외자원봉사를 몇 차례 다녀온 뜨거운 피의 대학생이거나, NGO 등을 통한 후원을 몇 년째 해온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이다. 간접적이지만 꾸준히 다른 나라의 빈곤 문제에 대해 머리와 마음으로 아파해 온 사람들은 일시적 자선 활동의 한계를 느끼고 문제의 근원을 개선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어온다. 공식은 존재한다. 바로 PCM(Project Cycle Management)이다.

합리적인 지역 프로젝트 관리 솔루션, P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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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사이클관리’(이하 PCM)란 다양한 툴을 사용하여 프로젝트를 기획, 시행, 평가하는 사이클을 관리하되, 각 과정의 피드백을 다음 기획 단계에 반영하여 발전적인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필자가 캄보디아에서 근무하던 당시 한국의 여러 교회에서 받은 후원금으로 마을의 아동복지관을 운영하는 A씨가 있었다. 이 복지관은 회계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조차도 정확히 어느 교회에서 얼마가 입금되는지 잘 알지 못할 정도로 자금관리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지인의 경험에 의하면, 복지관을 방문했을 때는 찾아볼 수 없던 아이들이 ‘손님이 찾아왔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진 후에야 하나 둘 모였다고 한다. 카메라를 꺼내 복지관의 사진을 찍으려 하자 아이들은 갑자기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기 시작했단다. 복지관 구석에는 컴퓨터가 네 대 있었는데, 전기 코드는 뽑혀있고, 천으로 커버가 쌓여있었다.

현장에서 근무하다보면 한국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녀/성자의 반열에 올라도 될 정도로 헌신과 책임감을 지닌 분들도 있는 반면, 꽤 알려진 종교인이나 유명인이 담당하는데도 엉터리로 사업을 전개하는 경우 또한 종종 마주칠 수 있다. A씨의 경우는 현지에서 계획도 책임감도 없이 방만하게 운영하는 자선사업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앞서 언급한 PCM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소개하며, 위와 같이 주먹구구식의 자선사업으로 변질되어 지역주민들의 장기적 의존을 낳는 소위 ‘안하느니만 못하는 국제개발협력’으로 전락하지 않는 가이드라인을 독자에게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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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사업 기획 및 집행 관리 과정의 개요

 

지역 특성 반영을 위한 수요 조사와 기본계획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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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M의 첫 단계인 기획에서 수요 조사는 결코 빠져서는 안 되는 첫 단추이다. 대상 국가의 중앙 정부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거나, 또는 직접 주민들로부터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어떤 사업을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 규모로 하면 좋을지 밑그림을 그려보는 것이다. 특히 제한된 자원으로 프로젝트를 할 수밖에 없는 개인 사업자나 NGO는 무턱대고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 없이 천편일률적으로 아동복지관, 학교를 설립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과정을 통해 좀 더 지역의 수요에 적합하고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고민해볼 수 있다.

 

"마을의 어린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집안 살림이나 농사 관련 잡다한 일을 하니, 글자도 못 읽고 도시에 나가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다며 마을 주민들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사업의 목적과 목표라는 기본 얼개를 수립할 수 있다.

 

"목적(goal): 아동이 교육을 통해 발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목표(objective): 아동이 학교 교육을 통해 문맹을 벗어난다."

 

다양한 분석툴을 활용한 타당성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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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단체가 가진 강점과 약점, 지역사회가 가지고 있는 강점과 약점, 사회/경제/문화적 배경 등을 조사하여 과연 이런 목적과 목표로 프로젝트를 시작해도 좋은지 타당성 조사를 하게 된다. 이때 기업에서 많이 사용하는 SWOT 분석이나, 비용-효과/비용-편익분석과 같은 도구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단체가 국내외에서 아동교육의 전문성을 갖고 있다고 하자. 하지만 마을에서는 저학년 아동의 몸이 왜소하여 보통 1~2학년 시기에는 부모들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꺼리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단체의 강점(아동교육의 전문성), 이 마을의 환경(아동교육에 대한 열의가 높지 않음)이나 마을 어린이들의 특징(몸이 왜소하여 등하교의 어려움이 있음)으로 인해 발휘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프로젝트의 타당성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물론 다양한 캠페인으로 마을의 문화를 바꾸고, 아동들을 대상으로 영양공급과 같은 장기적 지원으로 어린이들의 약점을 개선해가면서 진행해보겠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는 비용 대비 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다."

 

이 외에도 자료 조사에는 여느 사회과학 조사와 다름없이 다양한 양적 조사와 질적 조사 방법이 있을 수 있는데, 국제개발협력에서는 무엇보다 참여 조사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즉, 프로젝트의 수혜를 받는 주민들의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조사법으로 그들을 직접 만나 설문조사,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 등을 통해 다양한 이익집단의 의견을 듣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의 의견을 들었더니 전반적으로 우물가 근처에 학교 증축을 희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천히 마을 주민들의 연령과 성별, 권력구조를 고려하여 그 목소리를 들어보자. 앞서 우물가 근처에 학교를 증축하자고 했던 그룹은 마을의 이장을 중심으로, 마을의 자원(이경우는 우물)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기득권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실제로 여러 이유로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있는 소외 계층의 집은 우물가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어, 이곳에 학교를 증축하면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집단보다는 이미 자원을 상대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는 집단에 유리한 프로젝트가 될 것이 뻔했다."

 

위의 예는 현장 방문에서 매우 자주 범하는 실수로, “다수의 목소리=도움을 줘야 하는 부분”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 가장 소외된 계층은 사회문화적 구조 때문에 이런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들의 수요를 충분히 반영한 프로젝트 기획이 필수적이다.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주민들을 참여시키는 것은 그 자체가 프로젝트의 기본 방법이자 목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프로젝트는 일시적으로 주민들의 어려움을 경감하는데 그치는 시혜적인 프로젝트에 지나지 않고, 장기적으로는 외부 의존성을 키우는 독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호에서도 강조했다시피 처음부터 주민들의 의견을 묻고 분석하면 프로젝트의 진행 속도는 더딜지 몰라도, 어느 순간 주민들의 참여와 주인 의식을 목격할 수 있게 되고,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프로젝트의 단기적 성과는 물론 장기적 지속 가능성까지 약속하는 열쇠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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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SWOT 분석을 통한 타당성 조사

 

분석 결과를 반영한 구체적인 사업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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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충분한 조사 결과로 해당 지역에서 어떤 프로젝트가 적합하겠다는 모양이 잡히면 본격적으로 사업 기획에 돌입하게 된다. 앞서 만들었던 목적과 목표의 기본 얼개를 좀 더 구체적으로 확장하는 것인데, 전 과정에서 수집한 조사 내용을 통해서 마을이 가지고 있는 문제와 강점, 그 문제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원인부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활동 내용, 예산 등을 포함하는 수십 페이지에 이르는 사업 계획을 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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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학교에 등교하는 학생들의 성별을 보니 심각한 성비 불균형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그 문제의 원인을 추적하던 중 여학생들이 등교길에 주변 마을 남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거나, 심한 경우 납치를 당하는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는 사실을 여아를 둔 어머니들과의 인터뷰에서 파악할 수 있었다. 이 경우 여학생들이 등하교시 단체로 이동할 수 있도록, 출발 시각과 장소를 조정하기 위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동시에 마을 전체적으로는 안전한 등하교길의 중요성을 함께 공감하고, 여아들을 수동적이고 대상화된 성으로 바라보는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여 전반적인 의식의 변화라는 장기적인 목표를 꾀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나온 사업 계획을 좀 더 잘게 쪼개어 활동 횟수, 기간, 예산, 책임자, 참여자 등을 모두 예측 및 계산해야 한다. 단체는 정기적으로 증명수단과 지표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계획한 대로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늘 예의주시해야 하며,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융통성 있게 대응하는 것이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끄는 관건이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네팔의 경우 많은 건축자재를 인도에서 수입하는데, 정치적 긴장감이 조성되면 수출입로가 일시적으로 막히는 경우가 잦으며, 이 경우 자재값이갑자기 치솟는 경우도 허다핟. 상황에 따라 다른 자재로 교체하는 방안(지역 주민들이 사용하는 지역의 자재를 사용하는 방법), 건축 시기를 미루는 방안(대신 건축이 진행될 수 있는 건기/우기와 같은 계절적인 환경도 고려할 것)등을 대안으로 취할 수 있다.

 

이 전 과정에서 나오는 피드백이나 교훈 등을 늘 적시에 반영하여 손실을 최소화하고, 사업의 긍정적 임팩트를 극대화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코디네이터나 매니저들의 핵심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수십 억 원을 주무르는 펀드매니저도 투자의 경과 및 결과에 따라 잠을 못 이루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타인의 삶과 그들의 마을을 다루는 국제개발협력 코디네이터들은 당연히 더욱 큰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에 임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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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로그프레임(논리모델) 예시

 

앞서 언급하였던 각종 공식들만큼이나 PCM은 사회과학적인 도구답게 설명이 명쾌한 편이다. 그러나 한국 단체가 진행하고 있는 많은 국제개발협력 현장에서는 여전히 PCM과 같은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접근법이 무시되고 있는 편이다. 안면이 있는 사람의 고향을 찾아가서, 단체가 다른 지역에서 몇 번 해본 경험이 있는 프로젝트를 그대로 진행한다. 주민들의 의견을 다양하게 듣기보다는, 지역의 힘 있는 유지들을 중심으로 논의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어찌어찌 진행은 되지만 지역주민들의 주인의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수년간 이런저런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초선 조사나, 증명수단, 지표 등을 확립 및 수집하지 않아, 주먹구구식으로 “여기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는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라는 식으로 프로젝트의 결과를 표현하기도 한다.

공식만으로 정답을 도출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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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M이 모든 문제의 해답인 것처럼 글을 시작하였지만, 과학이나 수학 공식과는 달리 국제개발협력사업은 사람을 다루는 일이다. 자연 조건, 국내외의 정치적 리스크, 문화 차이, 권력 관계, 인간 심리와 같은 많은 변수들이 애초의 예상과 계획을 흔들어 프로젝트 진행에 치명타를 입히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도중 그런 이유로 속이 상해 울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일을 그만두고 싶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우리의 인생이때로눈 우리를 울게 하거나 웃게 하듯이, 국제개발협력 프로젝트 역시 공식을 따랐을 때 정답이 나오는 수학 문제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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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결국 프로젝트가 하려는 것은 그 지역 주민들이 대대손손 살아오고 앞으로도 수 백 수 천 년을 살아갈 마을에서 그 사람들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보려는 노력이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진행하는 3년 짜리 프로젝트가 그 과정에서 좌충우돌하더라도, 그들이 살아낸 시간과 살아갈 시간에 비하면 턱없이 짧고 미약한 노력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히 남의 마을에서 남의 인생에 영향을 주게 될 일을 할 때는, 수십 쪽이 넘는 PCM 문서를 만들고 고치기를 반복해야 하기도 하고, 끊임없이 주민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며, 그 나라에 대한 국내외 자료를 읽고 공부하면서도 불안하고 부족한 듯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국제개발협력 사업에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한국의 후원자가, 현장에서 일하는 내가, 현장의 주민들이 “함께” 고민하고 협력하는 “소통”과 “노력” 그 자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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