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지색 틸리모자를 쓰고 인자한 표정을 한 여자연예인이 어느 흑인 아이에게 다가옵니다. 아이의 슬픈 사연을 듣다가 안타까운 듯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아이가 조용히 여자연예인의 손을 잡으며 말합니다.

“캠페인 광고 처음이신가 봐요?” 

 

Let's save Africa! – Gone wrong

 

물론 현실에 이런 자선캠페인 전문 배우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상에서 희화화된 장면들이 우리가 접했던 펀드레이징 캠페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데 동감했다면, 노르웨이 학생들이 이 재치 있는 영상을 만든 의도를 절반은 파악한 셈입니다. 이 영상이 제기하는 문제는 ‘Poverty Pornography(이하 Poverty porn)’입니다. ‘Poverty porn’란, 기부 모금 캠페인이나 신문 등 미디어에서 빈곤을 자극적으로 묘사하여, 대중들로 하여금 동정심을 불러일으켜 모금, 지지 등을 유도할 목적으로 쓰이는 사진들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Poverty porn는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일까요? 또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Poverty Pornography –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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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verty porn는 비극 그 자체를 담아내는 것을 넘어, 비극을 이용하는 행위이다. (출처: rootsandwires)

 

Poverty porn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일방적이고 부정적인 편견을 만들어낸다는 점입니다. (사실 빈곤과 관련한 개발도상국을 떠올렸을 때 아프리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도 한 종류의 편견이고, 그 때문에  Poverty porn에 대한 논의는 주로 아프리카를 주요 대상으로 다뤄지기도 합니다.) 나이지리아의 작가 Chimamanda Ngozi Adichie는 “문제는 (아프리카의) 절망적인 모습들이 거짓이라는 게 아니라, 그것이 불완전하다는 데 있다. Poverty porn는 하나(one)의 이야기를 유일(only)한 이야기로 만들어버린다.”고 지적했습니다. 개발도상국, 혹은 아프리카와 같은 국가를 이야기할 때 우리 머릿속에 연상되는 이미지를 생각하면 이러한 편견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앙상한 갈비뼈를 드러낸 어린 흑인 아이들, 자연재해와 기근, 전쟁과 민족 갈등… 이 중에 단 한 가지라도 개발도상국에 대한 긍정적인 연상이 없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오늘날, 소셜 임팩트의 관점에서 Poverty porn란 무엇인가? 기부펀드의 연간보고서에 쓰인 콩고의 성폭행 피해자의 사진,서양에서 온 봉사자를 올려다보는 웅크려 앉은 남아시아인의 사진, …(중략)… ‘이 경험이 저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라고 말하며, 몰려든 흑인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연예인들과 NGO 마케팅도 Poverty porn가 될 수 있다.  

– Poverty Porn and A New Way to Regard Social Impact 기사 중에서

 

치마만다 아디치: 단편적인 이야기의 위험성(Chimamanda Ngozi Adichie: The danger of a single story)

 

이러한 편견으로 인해 사람들은 빈곤에 처한 사람들을 스스로 삶을 통제할 능력이 없으며, 무기력하고, (서양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고, 이와 더불어 이들이 가진 잠재력과 능력을 저평가하게 됩니다. 실제로 영국의 봉사단체 VSO에서 발간한 보고서 ‘The Live Aid Legacy’에서는 74%의 영국인들이 개발도상국은 ‘서양사회의 진보한 지식과 돈에 의존하고 있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기울어진 권력관계에 담긴 불편한 시각 – 백인 구원자 콤플렉스 (White Savior Comp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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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The Live Aid Legacy’에서는 ‘개발(development)’이 ‘서양화(Westernisation)’와 유사한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는데, 이는 우월한 서양이 열등한 개발도상국을 구원한다는 관점을 갖고 자선을 하는, 이른바 ‘백인 구원자 콤플렉스(White Savior Complex)’와 관련이 있습니다. 문제는 Poverty porn가 바로 이 백인 구원자 콤플렉스의 시각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나이지리아계 미국인 작가인 Teju Cole은 KONY2012 캠페인에 깔린 백인 구원자 콤플렉스를 강력하게 비판한 바 있습니다. 가난한 아프리카를 구하려는 행위를 통해 서양인으로서의 우월감을 느끼는 경험일 뿐, 문제 해결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KONY2012 캠페인이 우간다의 사회적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과 관련한 비판은 임팩트스퀘어의 이전 포스팅에서도 언급된 바 있습니다. (참고글: 라이크(Like)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 슬랙티비즘(slacktivism)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들)

 

미국에서 가장 급속하게 성장하는 산업은 바로 ‘백인 구원자 콤플렉스’이다. 백인 구원자는 아침에 악랄한 정책을 지지하고, 점심께 자선단체를 찾아다니고, 저녁이 되면 상을 받는다. 백인 구원자 콤플렉스는 그들의 특권을 재확인하는 거대한 감정적인 경험에 관한 문제일 뿐, 정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Teju C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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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visible children의 Jason Russell(오른쪽)과 나이지리아 Lagos의 시위자(왼쪽) 모습.  

그들 역시 스스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잠재력이 있다.

출처: The Atlantic 원출처 : facebook AP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Poverty porn 문제를 완화할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미디어에 노출되는 개발도상국의 모습을 균형 있게 그려내야 합니다. 

1. 미디어 속 아프리카, 기울어진 추의 균형 맞추기 – Regarding Hum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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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garding Humanity’는 소셜임팩트 전문가들, 디자이너, 영화감독, 저널리스트, 학생들이 한 데 모여 개발도상국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담론을 만드는 공간입니다. 이들의 주요 목적은 빈곤에 처한 사람들을 무력한 피해자로만 보는 편견을 깨고, 균형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크게 Re:see, Re;Listen, Re:frame 라는 슬로건 아래에서 개발도상국의 다양한 면모를 반영하는 기사, 프로젝트, 동영상 등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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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regarding humanity 홈페이지

 

#1. 동상으로 고통받는 노르웨이에 난방기를 보내자! – AFRICA FOR NORWAY  

남아프리카 친구들의 그루브와 필링으로 ‘혹독한 겨울을 나며 동상에 걸려 생명에 위협(?)을 받는 노르웨이에 난방기를 보내주자!’는 내용을 담은 뮤직비디오입니다. 만약 노르웨이에 대한 정보가 '엄청 추워서 동상에 걸려 죽는사람이 많은 국가' 단 하나라면노르웨이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 들일까요? 역지사지의 위치에 놓음으로써 아프리카에 대한 일방적인 묘사를 재치 있게 비꼰 것이죠. 아프리카에는 기근, 빈곤과 같은 부정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능력있는 국민들도 있다는 것, 따라서 이와 같은 노력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달라는 것, 이것이 그들이 전하는 메세지입니다.

 

Africa For Norway – New charity single out now!

 

#2.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이야기 – Everyday Africa

Peter DiCampo와 Austin Merrill의 합동프로젝트 ‘Everyday Africa’는 아프리카의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유합니다. 무심코 SNS를 둘러보다 굶주리고 있는 아이 사진이 아닌 빨래를 널고, 자전거를 타고 있는 어느 케냐인의 사진을 접하면서 스쳐 가듯 생각하는 겁니다.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네’하고 말이죠. 아프리카의 비극적인 모습과 일상적인 모습이 다양하게 공존하게 함으로써, 이러한 비극이 우리와 같은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Peter DiCampo는 이를 통해 사람들이 빈곤, 기근과 같은 비극에 대해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라고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합니다. 개인적으로 그 정도 수준의 인식전환은 단일 프로젝트만으로는 어렵다고 보지만, 어찌되었건 아프리카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위한 시도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어보입니다.

 

everydayafrica

출처: Everyday Africa 인스타그램

2. Be Cre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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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극하여 기부를 유도하는 전략이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American Marketing Association의 연구에서는 슬픈 표정을 한 아이들의 사진이 행복한 표정을 한 아이들의 사진 보다 약 50% 이상 더 많은 모금을 유도했다고 합니다. 또 Wharton school의 마케팅 교수인 Deborah Small은 통계적 사실을 보여주는 것보다 인간의 심리 특성상 감정에 호소하는 ‘스토리텔링’ 기법이 비영리 단체의 모금 활동에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물론 비극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 또 사람의 자연스러운 감정 중 하나인 공감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Poverty porn의 문제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편중된 노출과 그로 인해 고착화 되는 편견이라는 점에서, 이제는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강화시키지 않는 것과 모금 효과를 유지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혁신적인 캠페인을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THE RUSTY RADIATOR AWARD/ THE GOLDEN RADIATOR AWARD

그런 의미에서 노르웨이의 학계 및 학생들의 연대 조직인 SAIH(Norwegian Students’ and Academics’ International Assistance Fund)이 기획한 가장 진부한 펀드레이징 캠페인 시상식(THE RUSTY RADIATOR AWARD)/ 가장 창의적인 캠페인 시상식(THE GOLDEN RADIATOR AWARD)은 혁신적인 펀드레이징 캠페인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서두에 인용된 영상도 바로 이 프로젝트의 홍보영상이기도 합니다.  

SAIH는 Poverty porn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NGO들이 캠페인 광고를 기획함에 있어서 그들 각자가 추구하는 사회문제의 본질로 되돌아오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각각 네 작품이 노미네이트되어 있으며, 12월 10일 영예로운, 그리고 불명예스러운 수상자가 공개된다고 합니다. 각 부문에서 현재 투표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캠페인광고를 감상해볼까요? 

 

THE RUSTY RADIATOR AWARD 

 

 Will You Be My Sponsor? — ChildFund TV

SAIH는 이 광고가 바로 앞 서 언급한 서양의 구원자 콤플렉스의 시각을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아이들, 단 92센트가 이 아이들의 삶을 구할 수 있다고 식의 내러티브 등 Poverty porn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이 대중들이 빈곤 문제를 단순한 소득 빈곤으로 인식하게 할 뿐 아니라, 광고 속 아이들의 능력과 잠재력을 간과하게 합니다.

 

THE GOLDEN RADIATOR AWARD

 

Jessie J – Price Tag lipdub by 500 women in Uganda

 

펀드레이징 캠페인 광고를 볼 때, 대부분은 죄책감이나 동정심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광고는 특히 여성이 가지고 있는 꿈과 잠재력에 초점을 두고, 이를 경쾌한 리듬과 음악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은 호기심을 자극하여 20-30대의 청년층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습니다. 500명의 여성이 출연했다는 점도 고무적입니다.

 

한편 SAIH는 펀드레이징 캠페인의 혁신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지침을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원문보기

 

–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 편견을 깨고, 우리가 어떻게 '다른가' 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같은가'에 초점 맞추자.

– (우리가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것, 혹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아니라 

 그들의 바람(wishes)와 욕구(needs)로부터 접근하자.

– Be creative!

– 하나의 이야기에 지나치게 함몰되지 말자. 많은 캠페인이 어느 이름없는 사람의 슬픈 사연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빈곤이 존재하는 이유와 그에 맞는 우리의 바람직한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올바른 정보이다. 

그들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1. 빈곤을 다각도로 이해하려는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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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verty porn 문제가 시사하는 것은 결국 빈곤이슈를 이해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개발도상국을 단면적으로 이해한 채,사회적 기업가 혹은 국제개발 종사자로써 그들이 갖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도와주지 않느니만 못한 꼴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빈곤을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광범위하게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옥스팜의 수석연구원 던컨 그린은 그의 저서 ‘빈곤에서 권력으로’에서 개발에 대해 ‘권리에 기반’하여 접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빈곤을 이해하게 되면,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제거해나감으로써 빈곤을 퇴치한다는 접근이 가능합니다.

 

그 여자는 고기 잡는 법을 이미 잘 알고 있어. 단지 불법 벌목꾼이나 밀어꾼이 강을 좀 내버려 두길바랄 뿐이야. 정부가 아시아개발은행의 원조를 받아 거대한 댐을 짓는 것도 원치 않아. 자신들의 삶에 피해를 주니까. 댐 건설을 한다고 경찰이 마을을 강제로 퇴거시키니까 말야. 실은 어떤 자선도 바라지 않아. 그냥 기본적인 권리가 존중되기를 바라는 거야.

– 던컨 그린, ‘빈곤에서 권력으로’ 중에서

그들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2. 우리는 얼마나 닮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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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verty porn가 개발도상국과 우리를 얼마나 다른가에 기반하여 구분 지었다면 이제는 같은 인간으로서 얼마나 닮아있는가에 기반하여 그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The golden radiator award의 투표율 1위를 달리고 있는 광고 ‘price tag’의 마지막쯤에는 ‘We want the same things that you want’라는 카피가 흐릅니다. 이는 단 1달러가 이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내러티브와 극명한 대조를 보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인 삶을 이야기할 때 단순히 의식주를 만족시키는 것만을 이야기하지 않듯이, 그들 역시 1달러가 있다고 해서 인간적인 삶이 충족되지는 않습니다. 또 우리가 미래에 대한 다양한 꿈을 갖고 있듯이 그들도 단지 '빈곤의 피해자'가 아니라, 나름의 꿈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주체성을 지닌 인간임을 인식하는 것 또한 우리가 가져야할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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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장비는 없어도 밤하늘 별보기를 좋아하는 낭만주의자. 비즈니스의 혁신성과 사람들의 도덕감정이 만나는 지점이 임팩트 비즈니스라고 믿으며, 그 가치를 더하는 일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신중한 편이지만 도전과 변화를 피하지 않는다. sugyeong@impactsqua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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