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s type=”horizontal”] [tabs_head] [tab_title]기고자 프로필[/tab_title] [/tabs_head] [tab]

김윤정 

리치 이니셔티브 (REACH Initiative) 대표 garukim@gmail.com

김윤정 대표는 서울대학교에서 역사 교육, 통합사회 학사 학위를, 런던대학교 교육연구대학원에서 교융 경제개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다년간 국제사면위원회 (Amnesty International), 세이브더칠드런을 통해 국제개발 협력 현장에서 활동했으며, 현재는 NGO가 아닌 리치 이니셔티브(REACH Initiative)라는 국제개발 협력 운동(Movement)의 공동 설립자이자 대표로서, 일상성에 기초한 소통 및 협력을 바탕으로 국내와 네팔의 마을과 주민들을 잇는 마을살리기 프로젝트를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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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3년

15억-5년

20만-1년

이 숫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 미스테리한 수수께끼를 맞추는 독자에게 선물이라도 보낼 각오가 되어있지만, 나는 99.9%의 확신을 하고 있다. 아무도 이 숫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리라는 것을.

일반적으로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자선사업, 국제개발협력, 자원봉사라는 단어들이 같은 단어처럼 혼용되거나, 또는 3종 세트로 함께 다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단어들의 정의, 그 범위와 포함 영역의 소개만으로 영국의 개발학과 교수가 한 학기 동안 강의를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그 학문적 넓이와 깊이는 방대하다. 여기에 지역, 사회, 인종, 문화, 경제 등의 개별적인 배경이 합쳐지면 이야기는 더욱 복잡다단해질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앞으로 내가 지면을 통해 오랜 시간 독자들과 풀어나가고 싶은 주제이다.

“저기 어느 가난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가 최근 한국 사회에서 위의 세 단어를 아우르는 구호이다. 오늘 하루를 살아내기도 각박한 한국 사회에서 이 문장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동한다면 당신은 참 따뜻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말은 정말 사실일까?

2004년 쓰나미가 인도네시아와 이웃 국가를 덮쳤고 수십만 명이 죽었다. 2010년 아이티에 지진이 발생해 역시 수십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수백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고, 삶의 터전은 무참히, 최소한 향후 수년간은 복구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다.

국가 재정이 약한 이 나라들은 해외로부터 오는 신속한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긴급구호라고 부른다. 약품은 물론이고,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당장 마실 물과 음식, 쉼터, 체온을 유지해 줄 옷가지와 이불 등이 지원 물품 1호다. 이런 사태가 터지면 9시 뉴스는 물론 각종 매체에서 참상을 보도하고, 사람들은 ARS 전화로, 길거리에서, 자동이체로, 네이버 해피빈으로 기부를 한다. 좋은 일이고 감사한 일이다. 특히 전문성과 투명성을 두루 겸비한 단체로 지원금이 전해진다면 일분일초를 다투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들을 문자 그대로 ‘살릴 수 있다’.

이런 긴급한 구호를 목적으로 하는 자선 이외에도, 빈곤이 심각한 지역을 도우려는 관심이 많아졌다. 한 번에 천 원을 기부하는 ARS,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어린이를 위해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만든 털모자, 한 달 3~5만 원으로 한 아이의 ‘부모’가 될 수 있는 아동후원, 학교나 기업의 지원을 받고 수일에서 수주 간 개발도상국을 직접 방문하는 현장봉사 등으로 다양한 노력, 돈, 시간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기부활동’이 나타났다.

긴급한 사태가 터지지 않았으나 빈곤이 심하다는 것은 거꾸로 추론하면, 구조적인 이유로 빈곤이 존재하며 확대·재생산되고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네팔의 산골마을에 사는 여자아이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은 많은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 중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문화적 배경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오는 힌두교의 문화에서는 여성은 결혼을 해야 여성과 그 부모가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므로 부모들은 여아를 학교에 보내는 것보다 하루라도 빨리 시집을 보내는 것을 선호한다. 여섯 살부터 신랑감이 점지 되는 경우가 많으며 십 대 초반에 이미 시집으로 들어가서 민며느리 생활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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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 여자아이들은 염소 먹이를 마련하는 일도 맡는다. 가벼워 보이지만, 보통 20kg에 상당하는 무게다.

 

2. 미시경제적 배경
많은 농민들은 작은 땅에 의존해 농사를 지으며, 가족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가사에 당장 도움이 되는 소일거리나 집안일을 하기에 바쁘다. 특히 여자아이는 집 안팎에서 살림살이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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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험난한 등굣길. 길의 상태 탓에 우기, 건기에 따라 학생들의 등교율이 크게 차이 난다.

 

3. 거시경제적 배경
불안정한 정국으로 국외 투자는 빈약하며, 저렴한 노동력을 기반으로 각종 1, 2차 산업을 장악한 중국과 인도의 등장으로 많은 개발도상국이 산업 발전과 일자리 제공을 못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에 가는 것은 그 어떤 투자 수익과도 관계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 중요성이 외면된다.

 

4. 지리적 배경
산골짜기는 길이 좋지 않아 학교까지 산길을
서너 시간 걸어야 하는 경우가 많고, 등하굣길에 사고를 겪는 경우도 많다. 우기가 되어 여러 달 동안 학교 가는 길이 산사태로 사라져버린 경우가 허다하다.

이곳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도움으로 여자아이가 글을 읽을 수 있게 될까? 모금된 돈으로 마을에 새로 학교와 도서관을 하나 지어주는 것이, 봉사팀을 보내서 마을의 어린이들과 운동회를 하고, 학교 벽을 페인트로 칠해주는 것이 이 마을과 이 마을에서 태어난 한 여자아이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당신이 진정으로 개발도상국에서 하고 싶은 일과 보고 싶은 변화는 무엇인가? 이 문제가 간단치 않은 문제인지 느껴지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독자라면 글의 서두에 제시한 숫자에 대한 설명을 들을 준비가 된 것이다.

2010년 미국 정부는 아동보호와 인신매매 방지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네팔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체들을 대상으로 사업공모전을 실시하였다. 나는 네팔 국가전문가, 인신매매 현장 활동가 등으로 이뤄진 테스크포스팀에서 함께 제안서를 썼다. 3년 간 진행할 사업 제안서의 예산은 70억 원이었다. 그 중 내가 전담하던 프로젝트는 2008년부터 약 5년 간 시행되는 아동교육 및 보호 프로젝트로 총 15억 원의 예산이 필요한 사업이었다.

네팔의 산골 마을을 나는 한 달도 빠짐없이 찾아다녔다. 마을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주된 활동이었다. “얼마의 예산을 가지고 우리 마을에 들어왔니?”, “학교를 지어줘”, “우물을 만들어줘”, “내가 이장이니까 나에게 오토바이를 사주면 내가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주지”와 같은 이야기들이 내가 처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이미 이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크고 작은 NGO, 기업, 외국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마구 사용한 탓에 폐허로 변해버린 학교 앞에서 는 큰 회의에 빠졌다.

준비된 예산을 가지고 20년 전 영국이 지었던 학교를 재건해주고, 10년 전 미국이 지어준 마을회관을 보수해주고, 5년 전 일본이 지어준 화장실을 증축해주는 일은 마땅히 필요한 솔루션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지원의 끝에는 또다시 몇 년 만에 폐허로 변해버리는 공간과 더욱더 심화되는 마을 사람들의 의존성이 불 보듯 뻔한 것도 사실이었다. 외부에서 온 돈과 관심으로 주민들이 살아가는 공간은 ‘사업현장’이 되어있었고, 마을 주민들은 비굴한 눈빛으로 자기들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설명하기에 바빴다.

나는 그곳을 계속해서 찾아갔다. 몇 달이 지나도 무엇을 해주겠다는 얘기가 없자 사람들의 관심은 시들해졌다. 대신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누구네 아빠는 술을 많이 마신다는 험담부터 누구네 딸이 옆마을에 비싼 신붓값을 받고 시집가게 되었다는 얘기를 나눠주었다. 이 사람들과 앉아서 옥수수를 까며, 같이 밥을 먹으며, 같이 잠을 자며 이야기를 들었다. 몇 명의 사람들은 아이가 학교에 다니고 공부를 잘해서 교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몇 명의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가 집에서 말을 좀 잘 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1인당 GNP 2만 불이 넘는 한국의 부모와 일 년에 20만 원 정도 버는 이곳의 부모들의 마음이 같다는 진리를 보았다. 그렇게 진정한 소통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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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학부모와의 만남은 이렇게 학교에서 하는 경우와 직접 가가호호를 찾아다니는 경우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들의 고민거리를 나누기 시작했고, 나는 그 중 어린이들의 교육과 보호 증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넌지시 비침으로써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내가 돈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은 주민들은 (물론 나는 3억이 있었다) 아무래도 무너져가는 교실을 개보수 하기는 해야 하는데 어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해왔다. 마을 건축물의 대부분은 마을에서 나는 돌로 벽을 쌓고 지붕을 양철판으로 덮는 형식인데, 유일한 시멘트 건물은 바로 국외 지원을 받아 지은 학교였다. 건물이 노화되었지만, 주민들은 개보수의 노하우도, 의지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렌터카를 청소하고 고치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나는 왜 학교를 꼭 시멘트로 지어야 하냐며, 주민들 집처럼 돌로 지으면 안 되냐고 반문했다. 주민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래도 학교는 시멘트로 지어야지. 어차피 외부사람들이 시멘트로 지어주게 될 거야”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쨌든 학교를 좀 고치고 싶다는 마음도 강했던 것 같다. 결국, 논의 끝에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농한기를 이용하여 학부모들이 돌아가며 돌을 깨고, 그 돌로 건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1원 한 푼 내지 않았다. 대신 마을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그들이 내려놓고 있었던 그들 자신의 삶과 자발적인 의지의 중요성을 눈으로 확인하고 “우와 진짜 대단한데요!” 하고 경탄해줬을 뿐이다. 오랫동안 내외부적인 이유로 침체되어 있었던 마을은 외부에서 온 사람의 관심에 자극받아 작지만 위대한 자신들의 가능성을 경험한 것이었다. 변화는 그렇게 천천히 마을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일어났다.

학교가 거의 완성이 되어갈 무렵 주민들이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아무래도 양철지붕을 올려야 하는데, 이건 우리 마을에서 품앗이해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잖아. 어떻게 양철지붕을 구할 방법이 있는지 네가 한번 알아봐 줄래?” 나는 한번 알아보겠다는 두리뭉실한 답을 하고 마을을 내려왔다. 다음 번에 마을에 갈 때는 물론 양철지붕을 살 수 있는 돈을 준비해 갔는데, 때마침 마을 어머니회에서 나를 불러 두 손에 꼬깃꼬깃한 돈을 쥐어주는 것이었다. 지난 수년간 매주 어머니회 계 모임에서 한 사람당 50원씩 모은 돈인데 이번에 요긴하게 사용하면 좋겠다고 만장일치를 봤단다. 20만 원이었다. 이제 이 마을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미적거리고 있으면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학교로 쫓아낸다. 하루에 100원이라도 벌게 하려고 학교 대신 읍내로 보내던 부모들이었다.

이 마을은 교사가 수업을 진행하지 않고 있으면 학부모가 와서 항의를 한다. 학부모들이 쌀을 모아 정부 월급을 받지 못하는 교사들에게 주기도 한다. 수업일수의 1/3 이상을 교사가 수업을 하지 않던 학교였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가득 찬 반짝이는 눈을 갖고 수업에 임한다. 부모와 교사, 마을이 학교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아이들도 느끼고 있다. 1/3 이상의 아이들이 학업 성취도가 낮아서 같은 학년을 몇 년 째 반복하던 학교였다.

몇 달이 지나 오랜만에 마을을 찾았더니 온 마을 사람들이 둘러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장님이 운을 뗐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자기들과 함께 해주어서 감사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학교 화장실이나 마을의 부족한 부분을 마을 주민들과 개선해나갈 계획도 밝혔다. 너무 기뻐서 코끝이 찡해오려는데 마지막으로 부탁할 것이 있다고 하셨다. 혹시 또 예전의 모습으로 무엇인가를 부탁하려는가 걱정이 앞섰는데 이장님은 이렇게 물었다. “우리 마을에서 도시로 나가 일하는 사람도 생기고, 읍내에 가서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보는 사람도 생기면서 많은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소.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기에 제일 걱정이 되는 부분은 어린이들이 서로 돕기보다는 싸우거나 미워하는 감정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요. 마을 어른들은 이런 문제를 수년째 지켜보고 있는데, 당신은 이럴 때 어떻게 아이들이 서로 친하게 협동하며 지낼 수 있는지, 또 당신 나라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겠소?”

앞으로 지면을 통해 캄보디아와 네팔의 현장에서 일하고 살아가며 경험했던 것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사업이 놓치고 있는 대안들을 제안하려 한다. 여기에 마을 사람들과 외부사람의 진정한 소통과 이해, 긴 호흡과 인내심의 중요성, 주인의식과 자신감을 되찾는 것의 중요성, 외부 도움과 지원의 역할 등을 녹여낼 것이다. 독자가 국제개발협력에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 뜨거운 피의 소유자이든, 냉소적인 시각으로 그 의미에 회의를 던지는 차가운 피의 소유자이든, 앞으로 하나하나 이야기를 통해 따뜻한 마음을 함께 찾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36.5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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